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조각가 송영수 선생이 있는 풍경 본문



며칠 전 우연히 성북동에 위치한
고 송영수(宋榮洙) 선생의 고거를 방문하게 되었다.
'천재 조각가'로 인정 받으며 모교인 서울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송 선생은
1970년 만 4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선생은 나무와 흙, 돌 그리고 쇠를 사용해 추상 작품들을 창작했다.
특히 쇠 용접 추상작품은 우리나라에서 효시를 이루었다고 평해진다.
그의 철 조각품은 드럼통을 잘라서 그 조각들을 용접해 붙이는 독특함을 보였다.
송 작가는 자연을 파괴해 작품을 만들려들기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또 하나의 자연을 창작하려는 예술관을 보였다는 평을 듣는다.
이어령은 그의 묘비명에
“피 없는 돌에 생명을 주고 거친 쇠부치에 아름다운 영혼을 깃들이게 한 사람”이라고 썼다.
송 작가가 1964년에 터를 잡은 이 집은 북악산 자락의 바위를 낀 마당을 두고 있다.
조각가답게 이 바위 동산을 무척 맘에 들어했다고 부인 사공정숙 여사가 귀띔한다.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아름다움’이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 대칭으로 새긴 청동부조가 2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서 있었다. 길이가 3m쯤 되어보이는 위풍당당한 모습이기도 하려니와 청동의 푸른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와 단박에 시선을 뺏는다. 두 보살의 이미지는 한 없이 온화해서 보는 이의 마음이 절로 평화를 얻는다.

마당 한 가운데 백년을 넘긴 느티나무가 서 있다. 가지를 자주 잘라준 탓인지 여늬 느티나무 같지 않게 키가 작은 대신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모습으로 남아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어쩔 수 없이 큰 분재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되지만 그렇다고 정원 전체가 풍기는 안정감을 해칠 정도는 아니어서 오히려 주변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인다. 그것은 마치 정(正)들 속의 반(反)이 주는 variation 같아서 '부조화 속의 조화'처럼 느껴진다.

그가 흡족해 했던 바위 동산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선생의 흔적을 읽게 된다.
비로소 이 정원이 자아내는 평화로움이 마리아와 두 보살의 자비로움에서 비롯됨을 눈치챈다.



백일홍과 모과나무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시선이 모과에 이르자 노오란 열매가 절로 그려진다.
선생이 이 나무 아래서 부인과 더불어 2남 2녀의 자제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문득 한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그 시인의 집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있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그 나무 아래서 아내가 만든 소면을 먹으며 든 생각을 읊고 있다.
당신은 소면을 삶고 나는 상을 차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살구나무 아래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어 온 오래된 나무 아래서 국수를 다 먹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포개 놓은 뒤 당신은
나무의 주름진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일 것이다
잠시 후면,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이 오리라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봄날의 번개처럼
물 위에 이는 꽃과 바람처럼
이곳에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우리는 부재하리라
그 많은 생 중 하나에서 소면을 좋아하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던 우리는
여기에 없으리라
몇 번의 소란스러움이 지나면 나 혼자 혹은 당신 혼자
이 나무 아래 빈 의자 앞에 늦도록 앉아 있으리라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전부인가
이제 막 꽃을 피운 늙은 살구나무 아래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단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 두 육체에 나뉘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영원한 휴식인가
아니면 잠깐의 순간이 지난 후의 재회인가
이 영원 속에서 죽음은 누락된 작은 기억일 뿐
나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경이로워하는 것이다
저녁의 환한 살구나무 아래서
- 류시화 <소면>
황금색 살구는 여름 초저녁 나무를 환하게 만든다. 이럴 때면 살구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떨어진 살구를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살구는 가족과 함께 나누기에 좋은 과일이다. 그래서 옛날 좀 산다는 집 마당엔 빠지지 않고 살구나무가 있었다. 시인은 이 나무 아래서 저녁을 먹는 가족의 단란한 모습에서 오히려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삶의 평화로움과 눈부심을 만끽한다. 이때 살구나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만물은 저녁 어스름 무렵에 가장 선연한 색깔을 낸다. ‘음예陰翳의 시간’을 이름이다.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에서 만물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빛을 드러낸다. 그런 연후에 음예의 빛은 어둠 속으로 소멸한다. 빛은 묘한 것이어서 누군가에게는 밝음으로 누군가에게는 이윽고 어두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부들이 바다 위에서 어떤 빛을 발견하면 아무 이유 없이 그 빛을 따라가다 영원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는데 이때 그 빛은 죽음으로 이끄는 어두움이 된다.
부인의 회고로는 송 작가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시던 1970년 4월 1일 아침
집을 나서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집에 아틀리에도 있고 막내(상기, 현 고대 스페인어과 교수, 당시 네 살)가 재롱도 부리고 모든 사람이 내 조각을 좋아하니 난 참 행복해.”
그도 그즈음 어떤 빛을 만났던 것일까? 한 해 전 만든 <감마>는 영원히 이어지는 삶과 죽음을 형상화하고 있고, 마지막 유작이 된 <공허>는 심장이 없는 새가 허공에 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 근원적 삶의 허무감 속에서 그가 말한 ‘행복’은 그에게 다가왔던 빛이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음예의 빛.


송영수 작가가 가장 좋아했다는 <피리 부는 천사> 부조를 배경으로 앉은 사공정숙 여사
여든 넷의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여전한 젊음을 유지하고 계신다
모과나무 앞이다



지하 공간에 마련된 송영수(1930~1970) 작가 전시실
그는 이 공간에서 가족들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다
잠시 일상에서 누락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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