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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오거서루’ 여섯 멤버들은 모두 소헌 서실에서 수학한 동문 출신들로서 서예로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다. 모두가 출중한 글 솜씨로 목하 “한국 서단을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게감을 보인다. ‘오거서루五車書樓’는 ‘선비라면 족히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그룹의 리더 격인 한얼 이종선李鍾宣 1953~ 씨가 한문 스승인 重山 허호구 선생에게서 받은 이름이다. 원래 한얼 이종선과 나현 이은설, 이촌 김재봉, 우현 이재무, 유재 임종현 등 5인으로 시작했다가 7년전 우현이 급작히 세상을 떠나면서 그 빈자리에 남경 김현선, 우봉 이정철이 합류했다. 서울 종로의 수운회관에서 요일별로 나누어 서예교실을 운영하며 30년간 함께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곁에서 지켜본 ‘오거서..
2022년 9월 2일 저녁 종로 수운회관 1203호. ‘오거서루’에 속한 일군의 장년 서예가들이 모여 작품들을 추리고 있다. 10월 26일에 개인전을 갖는 이촌 김재봉1961~ 씨의 작품 40점 가운데 30점을 선별하려는 것이다. 이촌은 어릴 적 필체가 뛰어났던 형들의 구박을 받다 서예에 입문한 지 2년 만인 1984년에 대한민국 예술대상을 수상한 천재이다. 가히 필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는데 좀 늦게 빛을 발했을 뿐이었다. 그는 지난 6개월 간 17세기 청淸대의 문장가 장조張潮가 남긴 속 글들을 화선지에 올리는 작업을 해왔다. 모두가 자연과 벗, 멋, 책에 관한 수필과 소품들로서 도학적 분위기를 풍긴다. 모두 129점에 달했다. 예서 행서 초서 전서를 총망라했다. 오자 한 자 고쳐 쓴 것 없이 일필휘지로 ..
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서울에는 장대비가 내렸다. 인사동 거리는 쏟아지는 비 탓에 평소보다 인적이 뜸했다. 그 거리를 연두색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가 비로 쓸고 있었다. “비로 비를 쓸어요” ‘우중에도 일을 하느냐’는 필자의 말에 그가 씩 웃으며 던진 대답이다. 말이 재미나다고 느낀다. 유머를 아는 사람이다. 비는 빡빡 깎은 그의 민머리에 사정없이 쏟아져내려 보는 이를 안쓰럽게 한다. 비가 퍼붓는데도 중년의 뮤지션 하나가 색소폰을 불며 버스킹을 하고 있는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상자에 집어넣는다. 심성이 따뜻한 사람이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 결코 넉넉지 않을 형편인데도 타인의 외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가 궁금해졌다. 남..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로 소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치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시인의 는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 그런 슬픔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며 그들과 말없이 교감하고픈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바쁘고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과 모두가 홀로인 공간 속에서 외로움은 다른 외로움을, 슬..
김장철을 맞아 집집마다 배추며 무며 소금이며 젓갈을 장만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일 년치 먹거리를 준비한다. 필자의 집에서도 농협에 염장 배추를 주문하고 양념 속으로 쓸 재료들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스무 포기만 하기로 했다. 4인 식구가 먹기에는 부족한 양이지만 김장에 힘이 들어서이다. 예전에는 11월에 하던 김장을 요즘은 일 년에 서너 번씩 한다. 필자는 갈치나 굴 혹은 새우젓을 넣어 삭힌 김치를 좋아하지만, 올해도 멸치액젓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김장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탓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김치에 대한 추억을 향유하고 있을 터이다. 필자의 경우는 절집에서 만난 김치가 그에 해당한다. 2007년 봄 경상남도 양산의 한 암자에서 수도 중인 조월釣月 스님을 만..
매년 10월이면 충남 강경은 젓갈로 뒤덮인다. ‘젓갈 축제’ 때문이다. 새우젓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을에 잡은 추젓을 필두로 5월 새우로 담근 오젓, 6월의 육젓 등이 골고루 전시돼 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새우의 크기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6월 산, 5월 산, 9월 산 순서로 크다. 색깔은 육젓이 붉고 오젓은 핑크색, 추젓은 희다. 산란기인 6월에 잡힌 새우가 가장 살이 굵고 감칠맛과 단맛이 좋다고 한다. 새우젓 외에 황석어젓, 밴댕이젓 등도 보인다. 강경은 서해의 해물 집산 전진기지여서 조선시대에는 3대 시장에 속했을 정도로 대단했고, 지금도 젓갈 덕에 여전히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조선말 서유구1764~1846가 펴낸 는 “강경포 어선들은 청어와 조기를 많이 잡았고 소금이 많이 ..
시골길을 달리다 어떤 장면과 마주치면 절로 눈길을 주게 되는 풍경 하나가 있다. 하천에서 천렵을 하는 장면이다. 두어 명이 막대를 움직여 고기를 몰고 한 사람은 족대를 들고 고기를 좇는다. 냇가에는 솥을 걸고 불을 피우고 있다. 그들은 곧 있을 어탕 파티를 벌이려는 것이다. 정겨운 풍경이다. 어탕의 맛을 떠올리면 이내 그들의 시간이 부러워진다. 2018년 9월 경남 산청군 생초면의 한 어탕집을 찾았다. 경호강 상류에 위치한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어탕이 유명한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맑은 물에서 잡은 피라미, 갈겨니, 꺽지, 쉬리, 모래무지, 수수미꾸리, 돌고기, 동자개(빠가사리) 등으로 끓여낸다. 잡고기들을 삶아 뼈를 걸러내고 푹 고아서 대파, 고사리, 배추, 방앗잎 넣어 국수를 삶는다. 피라미 새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