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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안주영 – ‘시간의 마음’을 읽고 ‘땅의 지문’을 지키려는 문화 독립 전사 본문

안주영 – ‘시간의 마음’을 읽고 ‘땅의 지문’을 지키려는 문화 독립 전사

gubo54 2022. 8. 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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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presentative of 'kote', jooyoung Ahn

 

종로 2가서 인사동으로 진입하는 초입 왼편에 복합 문화공간이 숨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정작 이 장소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필자도 서울 시내를 거의 꿰듯 돌아다니는 편이지만, 이 공간은 생소했다. 60년 묵은 5층 건물 해봉 빌딩을 ‘ㄱ’ 자 모양의 본관과 별관이 병풍처럼 두른 형상이다. 500평 부지에 건물 연면적 1000평의 규모이다.

이 공간 안에 카페, 전시실, 창작 랩, 서재, 커피숍, 숙박시설 등이 들어있다. 아티스트들과 창작인 수십 명이 수혜를 누린다. 공간의 이름은 ‘코트KOTE’이다. ‘꽃’과 ‘뜰’이라는 의미를 담은 작명이다.

 

첫 만남은 해봉 빌딩 1층에 들어선 ‘조선 살롱’이었다. 친구 평산이 ‘안安’이라는 와인바가 있다며 소개한 집이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코트’의 아티스트들이 대표의 성을 따 ‘안’으로 지은 것을 개명했다. 한 외국인의 작명 발음을 잘못 듣고 지은 거라는데 ‘안’보다는 ‘조선 살롱’이 더 공간의 성격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30평 정도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낡고 오래된 상태였지만, 곳곳에 아티스트들의 손길이 사진과 그림, 포스터, 그라피티Graffiti 등으로 젊음과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벽이나 기둥, 대들보 등은 모두 부서졌거나 구멍이 난 채로 이다. 그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시간의 그늘이지 싶었다. 밝음의 기운이 사위어가고 어둠이 힘을 얻는 순간의 얼굴. 그 순간은 시간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공간을 묵직하게 만든다. 그 공간엔 어둑한 실내등이나 어스름한 촛불이 어울린다. 폐허를 어루만지고 꾸민 손길들에 시선을 주고 있자니 페이 더나웨이Faye Dunaway1941~가 시간 저 너머에서 소환된다. 청순미와 퇴폐미를 함께 풍기던 묘한 배우였다. 폐허의 비장미를 풍기는 공간 속에서 가성비 좋은 스페인 리오하Rioja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자니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1916~59의 고전 ‘I’m a fool to love you’가 실내에 울려 퍼진다. 선곡이 어울린다고 여긴다. 볼티모어Baltimore 사창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14살 어느 날 나이트클럽 오디션에 나가 ‘외로운 나그네Travellin’ all alone’를 불러 소란스럽던 실내를 침묵에 빠트려버렸던 전설적인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할러데이의 목소리가 콘크리트 균열 속으로 파고 들어가 폐허와 하나가 된다고 느낀다. 일요일 오후에 있는 이곳의 재즈 공연도 그런 느낌을 줄 것이라 짐작해본다.

 

'조선살롱'

 

이 공간을 탄생시킨 주인공 안주영1968~ 대표가 위층 숙소에서 내려와 자리를 함께 했다. 3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인데 놀랍게도 50대였다. 그녀가 이 공간과 인연 맺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땅의 지문指紋’을 떠올린다. 동석했던 친구 동산이 언급한 ‘시간의 마음’이라는 단어도 비수처럼 뇌리에 박힌다. 시인 오규원1941~2007의 표현처럼 “시간도 사람처럼 인격과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공간도 손가락의 지문처럼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는 무늬를 이어간다는 의미에서였다. 그 두 단어가 이 터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한 중년 여성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2016년 ‘승동교회와 피맛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늙은 오동나무를 발견하고선 부둥켜안고 울었다. 유서 깊은 두 문화공간 가운데서 백여 년을 버텨온 나무였다. 그녀는 오동이 “건물에 포위당한 채 죽어가고 있다”라고 느꼈다. 피맛골 자리는 깡그리 헐리고 있었고, 코트 구역도 개발 국면에 처해있었다. 그 가운데에 선 오동은 머리 부분이 이미 잘려나간 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주영 씨는 나무의 영혼을 감지하며 ‘왜 이런 취급을 받고 있나?’ 안타까워했다. ‘예전 자기 집 마당에 서 있던 오동이 생각나서였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생면부지의 나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건 여간 섬세한 감성이 아니다. 일반이 표현하기는 어려운 감정선이다. ‘처지가 같다’고 여기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이입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 싶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치고 한글판 <타임 연구>지 편집장, 영어 통역사, 사모 펀드, 투자자문, 자산운용, 뉴욕 호텔 인수 프로젝트, 도심 재생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의 업무를 맡아하며 승승장구해 온 이력의 소유자여서 딱히 서러울 일이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부지불식간에 울음이 터지는 순간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는 산길을 오르다 떠나간 사람 생각에 왈칵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떤 음악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리움이나 아쉬움을 내밀하게 감춘 채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환경과 조우하면 속절없이 무너진다. 슬픔과 아픔, 그리움, 서러움 등의 감정들이 기억 저편에서 가슴을 찢고 터져 나오는 까닭이다. 시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까닭이다. 시간은 새벽의 여명에 묻어오기도 하고, 대낮의 햇살과 함께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황혼의 들판에 내려앉았다가, 한밤의 어둠 속에 침잠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시간의 메시지를 빛의 양으로 감지하며 시시각각 감정의 변화를 맛본다. 생각해보면,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우울하고 환호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희망하던 매 순간이 품었던 우리의 마음이 교호 작용을 거쳐 고스란히 시간 속에 투영된다. 때로 그 시간의 마음은 우리를 달래기도 하고 초조하게 하기도 하고 두렵게도 만들고 환희에 차게끔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시간에게도 꿈이 있고 슬픔이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고 사랑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시간의 마음을 몰라준다.”라고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그녀에게도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할 시간의 기억이 있었던 걸까. 가족을 위한 꽃병을 창가에 두는 여늬 여성들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살롱' 내부

 

시간은 종종 공간과 한 묶음으로 묶여 우리에게 그 마음을 드러낸다. 창경궁 문정전 뜰 앞 회화나무는 뒤주에 갇혀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 나무는 지금도 남아 그때의 비극을 전한다. 그 현장에 서면 시간의 마음이 나무와 뜰이라는 공간을 빌려 전해주는 그날의 참극을 듣는다. 유년 시절 바깥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울었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 앞에서 다시 절망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은 현재이자 생명이며 부활이다.

 

안 대표는 늙은 오동나무에서 20대 시절 몸 담았던 회사의 고故 신창호 회장을 떠올렸다고 이야기한다. 60년 대에 ‘피플’, ‘라이프’, ‘타임’ ‘뉴스위크’ 등 세계적인 외국간행물 판매대행을 시작으로 우일 문화사(UPA)라는 기업을 세운 인물이다. 신 회장 덕에 문화를 알고 피천득, 조병화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유도 할 수 있었다. 자기 인생에 ‘가장 깊은 영향력을 끼친 스승’이라 말한다. 그에게 오동은 점점 수호 천사의 존재로 다가온다. 처음엔 오동을 가엾게 여겼지만, 지금은 도리어 힘을 얻곤 한다.

 

“지칠 때 오동나무를 안으면 뒤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저를 감싸주는 느낌을 받아요.”

 

 

 

 

안 대표는 오동이 갈수록 봉황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발견에 놀라워한다. 봉황은 대나무 잎을 먹는데 그 대나무가 이웃한 승동교회에 있다. 오동은 악기의 재료로 쓰이는데 한때 본관 2.3층에 장안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래방이 있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늙은 오동은 반드시 노래 한 곡을 숨긴다桐千年老 恒藏一曲’는 옛말을 떠올린다. 필연처럼 전개돼온 이곳의 스토리는 땅의 지문과 나무의 영혼이 작용한 결과라고 여긴다.

 

 

'코트' 오동나무

 

‘경계의 뜰에 핀 꽃’이라 여기는 오동과 조우하면서 그의 삶이 그 나무와 연결 지어진 것을 보면 가히 운명적 만남이라 할 만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그녀는 ‘공간을 통한 나눔’의 실현을 소명으로 삼았다. 우선 오동부터 살려야 했다. 지붕을 뚫고 서 있던 오동나무를 보던 날 오동나무를 중심으로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릴 위기에 처한 오동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기를 들어야 했다. 오동나무를 지켜 중정을 만드는 방안으로 공간 재배치에 나섰다. 오동주변의 작은 건물들을 허물고 주 건물 3개 동은 남겨 리모델링을 거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2021년 불법철거로 일부가 부서진 별관은, ‘코트’ 사태를 자신의 일처럼 함께 견디어준 코트 커뮤니티와 예술가들 덕분에 지킬 수 있었고 보수공사를 통해 재탄생하고 있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온몸으로 막아 부서진 돌 틈에서 마침내 꽃으로 피어나, ‘코트’ 사태를 다룬 전시의 한 제목처럼, ‘깨어진 틈 사이로 피는 꽃’이 구현되고 있다.

 

 

별관 뒷편 오동이 자리 잡은 마당을 유럽식 중정中庭 모양의 공간으로 살리면, 이태리나 스페인의 도시들을 걷다가 골목 속에서 반갑게 만나게 되는, 휴식과 소통의 아담한 공간, 중정이 인사동에도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2021년 6월 국내에 거주하는 프렌치 커뮤니티들이 이 중정 공간에서 프랑스의 음악축제를 열어 즐겼고, 10월에는 벨기에 대사관이 주관하는 벨기에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난 3월 18일에는 매 학기마다 나라를 옮겨가며 유목민처럼 수업하는 미국 미네르바 대학 학생들이 이번 학기를 서울에서 지내면서 이곳에서 축제를 즐겼다. 모두가 서울 속에서 익숙한 풍경을 찾아낸 결과였다. 그녀는 이 공간으로 끌리듯 들어선 모든 이들을 “이 공간이 초대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들에게서 동지애 같은 에너지를 얻곤 한다.

 

 

 

19세기 운종로雲從路라 부르던 이 일대는 조선의 문사들이 거주하던 탑골이 그 중심에 있었다. 당대의 화가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이 여기 살던 명필 오세창1864~1953 등 친구들과 달빛 밝은 원각사지십층석탑 앞에서 시서화를 즐기며 교유하는 모습을 그린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에서 조선 후기 탑골 문사들의 풍류를 훔쳐볼 수 있다. 청계천 수표교는 남산골 담헌湛軒 홍대용1731~83의 집 ‘봄이 머무는 언덕留春塢’에서 반상班常과 적서嫡庶의 신분을 떠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어울리던 일군의 멋쟁이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안고 있는 곳이다. 어느 날 남산골 음악회에서 먼저 자리를 뜬 연장자 김용겸1702~89을 찾아 나선 담헌 일행이 수표교 난간에 기대선 채 달을 보고 있던 그를 발견하고선 즉시 다리 위에 술상을 차려 우정을 나누었다. 승동교회는 1893년 하층민이던 백정白丁 박성춘이 돈을 내 롯데호텔 자리에 지은 곤당골 교회가 1905년 옮겨온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분 해방 집합소였으며, 이웃한 탑골공원과 더불어 1919년 삼일 독립만세 운동의 발상지로서 역사의 산 현장이다. 조선살롱이 속한 해봉빌딩은 1907년에 연흥사가, 그 옆에는 1922년 조선극장이 들어서 1920, 30년 대 조선의 연극을 무대 위에 올리고, 무성 영화를 상영하던 유서 깊은 공간이었다. 코트 별관은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의 대표적인 호텔이었던 ‘호해여관’이 있던 자리로 애국지사들이 독립을 도모하던 곳이었다. 이 터 주변 곳곳에 깊이 박힌 ‘문화’라는 인문학적 지문을 지우지 않으려는 안 대표의 시도는 시간의 마음이 작용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코트' 창작 랩

 

오동을 중심으로 코트 스페이스, 내면의 서재, 코트랩, 코트 카페, 코트 가든, 코트 키친, 코트 아틀리에를 포진하려는 안 대표의 청사진은 복합적인 독립 문화공간 설립을 지향한다. 그녀는 이런 경험을 2013년 ‘명동성당 지하 신자 공간 만들기 1898’ 운동에 참여해서도 확인한 바 있다. 명동성당을 1898년 축성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주안점을 둔 프로젝트였다. 화장품과 중국인의 공간이 돼버린 명동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으려는 도심 재생 운동과 지향점을 맞췄다. 2014년에 완공됐다. 성당 입구에서 본당까지 계단길과 녹지광장을 조성했고, 혼배 성사 전용이던 문화홀은 쉬는 날 일반인의 연주 공연을 허용했다. 천 평의 지하공간에는 신자 지원시설을 집중 배치했다. 지하의 중앙에 광장을 두고 사방으로 꽃집, 서점, 화랑, 커피숍,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전시장, 간이 공연장, 수도원 물품 직판장 등을 마련했다. 그녀는 성당의 면모가 일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인식을 터득했다.

 

‘공간은 사용자가 마땅히 그 주인공이어야 한다’.

 

같은 배를 탄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공동운명체인데도 개발지상주의자인 동업자는 ‘죽었다’며 오동을 베어버리려 했었고, 별관을 철거하려 하고, 주차 공간을 만들 생각을 한다. ‘땡처리’ 업체들을 유치해 더 많은 임대료를 받고 싶어 한다. 개발이익을 최대화하려 함이다. 그동안 오동나무 앞 별관 건물을 파괴하려 포클레인을 동원하고, 고압수를 대포처럼 쏘고, 수시로 ‘용역’을 동원해 영업을 못하게 막고, 공간을 돌아다니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안 대표는 건물 파괴에 저항하다 물대포를 맞아 바닥에 쓰러지기도 하고, ‘용역’들의 갖은 횡포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해 왔다.

 

별관에는 한때 ‘독립 뇨리점’을 입점시켜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분위기와 메뉴를 앞세워 명소로 만들려 시도했으나 더 높은 임대료를 받으려는 동업자의 훼방으로 무산됐다. 자신이 직접 임차한 해봉빌딩에 입점시키려는 시도도 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당시 해봉빌딩은 5층 전체에 쓰레기가 가득했고, 지하에는 물이 찬 상태였는데 거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물을 빼내고 고치면서까지 유치하고 싶어 했다. 창의적이면서 터의 지문과도 잘 맞아 무릎을 쳤던 까닭이다.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는 인사동에 꽤 괜찮은 관광 콘텐츠가 하나 등장할 뻔했다.

안 대표는 계속되는 동업자의 방해에 마음이 편치 않다. 공존이 어려운 까닭이다.

 

“2016년 말 지분 20%로 참여했어요. 그러다 사업이 안정되자 저는 ‘아웃’되었죠. 2019년 말에 동업자가 ‘사기를 당해 20억 적자를 지고 임대료도 6개월 연체돼 명도 당할 상황에 처해 있다’며 도움을 요청해왔어요. 동업자가 진 적자를 10억으로 해 떠안고 지분을 50:50으로 나누고 제가 건물의 관리운영권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는 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체결했죠. 명도는 모면했지만, 동업자는 저와의 계약을 이행할 의사가 없었어요. 특히 본관 1층 전면 90평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제가 전차 계약을 체결한 공간인데도 막무가내입니다.”

 

2022년 3월에는 루이비통 트렁크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기획했다가 또다시 방해를 받았다. 고민 끝에 동업자 요구를 받아들여 ‘땡 처리’ 전시장 개장을 수락했다. 공격을 받으면 몸통을 지키기 위해 꼬리를 잘라주고 달아나는 도마뱀처럼 그도 창작의 산실인 ‘코트 랩’을 지키기 위해 전시공간을 양보한 것이다. 공존을 원치 않는 그들의 훼방이 있을 때마다 공허함을 느끼는 안 대표에게 친구들은 큰 힘이 된다. 특히 이곳에서 축제를 가졌던 프랑스 커뮤니티와 외국인 아티스트들이 이 공간에 머무르며 ‘코트’를 지원하고 있다. 저항 문구를 만들고, 인터넷에 실상을 올리고, 사진전을 열어 대중에 알리고, 노숙을 하며 ‘용역’의 침입에 맞서고, 피켓팅을 하며 시위에 동참한다. 꽃을 꽃으로 존재하게끔 도우려는 마음들의 결집이다. 안 대표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토니 쉐이 ‘자포스Zappos’ 신발 CEO의 신념이 옳았음을 확인하곤 한다. 토니 쉐이는 라스베이거스에 창작 공간을 만들면서 “여러 예술혼들이 모이면 기적이 발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기적은 창작뿐 아니라 예술 환경을 지키려는 마음에도 적용될 터이다.

 

코트 본관 1층 전시실

 

2백 평이나 되는 본관 건물 2층 코트랩 에 들어 선 공유 오피스와 ‘내면의 서재’에서는 입주 작가들의 자유로운 예술혼이 뿜어져 나온다. 연극영화 연출가. 광고 기획자, 메타버스 개발자, 패브릭 디자이너, 현대무용가, 사진 작가, 세프 등이다. 창작욕에 불타는 예술가들이 월 30만 원의 낮은 임대료로 자기 작업 공간을 갖추고, 옆에 자리한 서재에서 책을 읽고, 커피숍에서 드립 커피를 마시거나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며 영감을 떠올린다. 원래 건물주의 가구공예점이었다가 노래방, 음식점 등을 거친 공간이던 곳을 리모델링해 깔끔하게 재탄생시켰다. 그녀는 모든 늙고 낡은 것들을 재조합과 재배치로 끌어안고 가면서 수익 모델을 만드는 방안을 견지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예술의 자유를 구현하게 하고픈 ‘공정무역’의 철학을 견지한다. 아티스트들이 돈 걱정 않고 창작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고 싶은 것이다. 열정과 사명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켜 줄 돈 만들기, 그 셋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수익 창출 방안은 창작자들을 위한 공유공간 임대, 전시 대관, 이벤트 공연, 음악연주회, 파티, 출판기념회, 전시 오프닝&클로징 행사, 광고나 드라마 촬영, 브랜드 팝업/론칭 행사, 마켓, 세미나/콘퍼런스, 파티, 스몰웨딩, 이색 음식점 입점 등 문화 관련 사업들이다. 그렇게 이 땅의 지문을 보존하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의 마음’이 안 대표를 돕고 있는 형국이어서 ‘코트’의 전망은 밝아 보인다. 여러 조짐들이 있다. 광고회사들이 레트로 감성을 좇아 이 공간에서 CF를 촬영한 사례가 안 대표에게 예상 못한 힘을 실어주었다. 갤럭시와 아이폰 두 경쟁 휴대폰 회사가 차례로 이곳에서 촬영을 한 일은 이 공간의 가능성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스포츠용품 업체가 BTS를 홍보모델로 삼아 진행한 사은 행사는 직원 실수로 문제가 생겼었으나 결과적으로 BTS 팬클럽‘아미’와 인연을 맺어주고, 그들이 ‘코트 랩’의 첫 번째 입주자가 되는 전화위복의 행운을 제공했다. 코로나로 귀국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이 공간에 속속 둥지를 틀고 있다. 디지털 로봇비서RPA 기반의 업무자동화기업, 스마트 로봇을 활용하는 주얼리 공작소, 편집숍들이 들어오고 있다. 안 대표는 ‘코트’의 취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아티스트들로 구성한 예술인 연대 성격의 ‘예술 학교’ 프로그램도 모색하고 있다. ‘코트 랩’이 이들로 채워지면, 천군만마의 동지들이 생기게 될 터이다. 모두가 문화로서 문화를 지키고 살리려는 계획이다. ‘땅의 지문’을 매개로 경계를 허물고 사람을 이어 예술혼을 살리려는 안 대표의 뜻을 ‘시간의 마음’이 따뜻하게 품을 것이라 예상한다.

 

'내면의 서재'

 

뜻하지 않은 장소와 인연을 맺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생 스케줄에 없던 마음고생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한국 성씨 가운데 가장 고집이 세다’는 안安 씨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 펜스>의 줄거리처럼 어차피 ‘달’을 꿈꾸는 사람과 ‘6 펜스’를 좇는 사람이 한 공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이다. ‘개발’측의 방해는 ‘소음’ 정도로 치부할 것이다. 소음이 없는 자연계나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음도 알 터이다. ‘그래서’, ‘그러므로’보다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문법으로 쓸 줄 안다. 무엇보다 지켜야 할 오동나무가 운명공동체로 곁에 있다. 쉽게 무너질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이유이다. 이런 각오를 밝힌다.

 

“우연히 이 공간이 제게 왔어요. 평생 모은 돈을 이곳에 쏟아부었죠. 건물주가 나가라면 언제든 나가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다 해도 후회는 없어요. 운명처럼 제게 온 이 소중한 공간을 어떻게든 이 공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세상의 소리가 아닌 제 마음의 소리에 따라 하루를 살아도 영원히 사는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는 욕망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삼키고, 욕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모르는 부류들에게 순수와 환희로 피어나는 꽃의 의지를 보여주려 한다.

 

필자는 안주영 대표의 오동이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1921~86의 떡갈나무처럼 전설이 되기를 바란다. 전위 예술가인 보이스는 1982년 독일 중부 카셀Kassel 시에 7천 점의 비석을 세우고 그 끝에 떡갈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선 하나씩 하나씩 비석을 치우고 그 자리에 떡갈나무를 심어나가 마침내 5년 후 7천 그루가 들어선 녹색공간을 만들었다. “주차 공간도 비좁은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라고 비난하던 목소리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문화운동가 한 사람의 통찰력만으로도 세상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요제프 보이스가 떡갈나무로 시의 면모를 푸르게 바꾸었듯이, 안주영의 오동도 이 땅의 지문을 살리고 시간의 마음을 담는 인식 전환의 모티브로 역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 탓에 빗나간 것처럼 보이는 화살들마저도 모두가 과녁을 향했다는 사실을 알아 안 대표가 자부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면, 웃으며 옛 이야기 할 날이 올 터이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필자는 자주 인사동 ‘코트’의 ‘내면의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뒤져보거나 ‘조선 살롱’에서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할 듯싶다. 꽃이 피는 터인 ‘코트’에서 영혼이 아름다운 아티스트들과 더불어 꽃인 양 행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