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밀이 그에게로 와서 소주가 되었다 - 「밀과노닐다」 박성호 대표 본문

강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마을이 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자가용도 건너지 못하고, 걸어갈 수도 없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5라는 주소가 있다는 게 신기해 보인다. 강 너머로 몸을 감추고 있는 공간, 그곳이 ‘맹개마을’이다. ‘넓고 편안한 강마을’이라는 뜻의 지역 사투리 지명이다. 청량산서부터 흘러내린 이나리강이 학소대를 만나 여울을 이루며 긴 소沼를 만드는 풍경 곁에 자리잡았다. 퇴계 이황1501~70의 <미천장담彌川長潭>에도 등장하는 5백 년 역사의 유서 깊은 마을이지만, 오랫동안 버려진 곳이었다. ‘미彌’는 넓다는 뜻이어서 “‘미천彌川’의 지역 언어인 ‘맨강’이 ‘맹개’로 변했다.”라는 설이 전해온다. 맹개마을 안에는 푸르른 밀밭과 보리밭, 메밀밭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다. 밀로 술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바람결에 날려왔다. 2021년 여름에 강 맞은 편에 있는 농암 이현보1467~1555의 종택을 구경한 후 찾아 가려다 망연히 쳐다만 보고선 돌아온 적이 있어 그 공간은 더욱 궁금증을 유발했다. 강을 건너갈 수단이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길의 끝, 산의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어릴 적부터의 호기심이었다. 멋진 풍경, 멋진 세상이 비밀스럽게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맹개마을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언제 한번 꼭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우연히 기회가 왔다. 그곳 주인과 친한 심장섭 선생이 다리를 놓은 덕분이었다. 마침내 필자의 버킷 리스트 항목 하나가 달성되던 날, 맹개마을 성주가 키 큰 바퀴의 트랙터를 몰고 와 강변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트랙터에 올라타 강을 건너면서 희열에 젖었다. 그렇게 필자는 2022년 5월 15일 강을 건너 맹개마을로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입성’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성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절벽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내려와 놓이는 고성의 이미지가 작용한 까닭이다. “첫 방문은 좋은 계절에 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느낄 만큼 청명한 봄날이었다.

10만 ㎡의 왕국 안으로 첫발을 내디디자 부드러운 강바람과 달콤한 향내가 다가왔다. 아카시가 늘어선 오른쪽으로 고운 모래밭과 조약돌이 널린 강변이 눈에 들어왔다. 사유지라는 게 부러웠다. 이런 풍경을 꿈꿔와서일까, 어쩐지 와 본 듯한 ‘데자뷔’가 섬광처럼 기억의 틈새를 파고들며 잔잔한 기쁨을 선사한다.
내 일찍이 여기에 왔던 일이 있나니
그것이 언제며 어떻게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내 알 수 있는 것은 문 밖의 풀과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그 향기와
한숨 쉬는 물결 소리와 하변을 둘러싼 등불이니(하략)
<섬광>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강변에 이어 10분 길이의 밀밭을 걸은 다음 야산에 오르자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한쪽 끝에 멋진 단애를 배경으로 한 붉은 지붕의 2층 집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온통 ‘풍경이 주는 위로만큼 강력한 건 없다’는 평소의 생각을 재확인하게 된다.


“올 1월서부터 문을 닫고 있다가 4월 2일을 기해 다시 문을 열었어요”
그동안 임직원 모두가 일하느라 너무 지쳤다는 생각에 장기 휴식 시간을 가졌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방문 손님이나 숙박객들이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농가 스테이’를 포함해 동아리 모임, 친목회, 커플 데이트 등으로 해마다 7천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농촌진흥원 소속의 한 연구원이 들렀다가 소리쟁이를 뽑아 와서는 도움말을 주었다. “방치하면 온통 밀밭을 덮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한 식물이니 지금 뽑아줘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맹개마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안동시도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제안을 해왔지만, 사양했다.
“느리게, 불편하게 닿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사업가가 속도와 편리를 추구하지 않으려는 데서 박성호 대표만의 정신세계가 보였다. 순리를 거스러지 않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며,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의지가 읽혔다. 성주의 그런 심성이 성을 지켜주는 힘이 될 터였다. 이곳에는 어떤 인연으로 둥지를 틀게 됐을까.
“2007년 사업 탓에 심신이 지쳐 있어 귀농하려고 여기저기 보고 다녔습니다. 강을 끼고 있는 곳을 찾아 서울 근교 양평, 청평, 가평 쪽을 돌아다녔는데 작은 면적밖에 없어서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도산서원 주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근처를 둘러보다 우연히 이 마을을 만났는데 ‘바로 여기다’라는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강과 땅이 맞붙어 있고, 넓고, 숨어 있어서, 제 맘을 단박에 붙잡았죠”


IT 사업을 접고 이 땅에 정착해 농사 모드로 돌입했다. 강 가와 4,50분을 걸어 올라가는 산등성이에 밀밭을 일구었다. 전기도 없는 곳에서 4년간 캄캄한 밤을 보내다가 1억 원을 들여 산등성이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갖추었다. 파종서부터 추수까지 농사는 혼자서 한다. 트랙터를 이용한다고 해도 혼자 감당하기엔 넓은 면적이다. 7월 말까지 밀의 파도 속에서 지내다 메밀로 대체하는 가을에는 둥근달과 메밀꽃이 환상의 랑데부를 펼치는 풍경에 취하곤 했다. 봄가을 없이 힘든 날의 연속이었지만, 고요한 달빛 아래 들판을 덮는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밤하늘에 빽빽이 박힌 성좌들이 피로를 잊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휴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자연스레 사진가가 되어 연신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밀과 메밀은 생각만큼 돈이 되지 않았다. 쉽지 않을 것이라 각오는 했지만 저의가 많이 꺾였다. 생산한 밀가루로 빵과 누룩도 만들고 맥주 재료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부인 김선영 씨가 안동 시내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정착을 도왔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데서 희망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다름 아닌 맹개마을의 경치였다. 메밀밭이 사진 찍기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젊은 커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숙박객들을 위해 ‘소목화당小木花堂’이라는 이름의 목조 가옥을 비롯해 모두 3동의 숙박 건물을 마련하고 카페도 만들었다. 체험 숙박 프로그램 운영은 괜찮았다. 숙박 손님들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소주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됐다.
“제가 원래 술을 좋아하는데 손님들도 찾는 거예요. ‘밀도 소주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집에서 만들어 마셔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게 지금의 ‘진맥소주’예요”
박 대표가 소주를 복원한 과정은 경청해야 한다. 5백 년 전 조리서 속에 등장하는 ‘진맥소주’를 재현한 까닭이다. 선조들의 밀 소주 양조문화가 끊겼다가 박 대표 덕에 부활한 것이다. 1540년쯤에 편찬된 안동 선비 김유의 <수운잡방>이라는 사료에 ‘밀로 소주를 빚었다’는 기록이 박 대표의 주목을 끌었다. 117개 종의 음식 가운데 61개가 술 종류였는데 그중에 소주는 밀 소주 한 가지뿐이었다. 제조법은 없었지만 재료들이 기술돼있어 밀 농사꾼으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직접 재배한 통밀로 발효주를 세 번 빚고, 이것을 증류해 방울방울 떨어지는 증류수를 받은 후 1년 이상 숙성해 소주를 만든다. 95%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넣어 묽게 만든 희석식 대량생산 소주와는 양조 과정이 다르다. 소비자 성별과 나이, 취향을 고려해 22도서부터 53도까지 등급을 두었다. 53도가 최고라는 의견들이 많다고 한다. “밀 특유의 부드러움에 구운 밀의 향이 더해지고 단 맛과 단 향도 가미된다.”는 것이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도수가 높은 밀 맥주를 마시는 듯했다. 매력 있었다. 술 이름 ‘진맥’은 조선시대 당시 밀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지금도 경북 지역에서는 밀가루를 ‘진밀 가루’라고 부른다. ‘밀로 만드는 내밀한 술’이라는 의미를 함축해 ‘밀주’로 부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단절된 5백 년 세월을 잇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그렇게 밀은 박성호 대표에게로 와서 다시 소주가 되었다. 양조장과 관광사업으로 구성된 사업장의 이름도 <밀과노닐다>이다.

소주는 곡류나 감자류를 발효시킨 후 증류해서 만든다. 몽골이 페르시아를 치면서 배워 원元나라 시절 한반도에도 전래했다. 힘을 북돋우기에 좋은 술이었다. 어린 나이에 용상에 오른 “단종의 기력을 보하려 음용”케 한 실록 기록도 있다. 안동소주나 한산소곡주 등 우리 소주는 주로 쌀이나 찹쌀로 빚는다. 감자, 고구마, 수수, 조, 밀 등도 재료로 쓸 수 있지만, “쌀로 만드는 게 소주”라는 일반의 선입견을 깨는 게 힘들지 않을까, 박 대표는 우려했다. 밀이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로 오래됨에도 쌀과의 경쟁에서 뒤쳐졌다. 밀로 빚은 소주를 되살리려면 청정한 유기농 원재료의 힘에 기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풍미를 진하게 하기 위해 껍질 붙은 통밀로 원액을 만들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켜 막걸리를 빚은 후, 상압증류해 다시 소주를 만들었다. 통밀 발효 과정은 힘들었다.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밀이 쌀에 밀린 이유를 알만 했다. 박 대표는 양조법과 숙성 기간, 보존법에서 승부수를 찾았다. 누룩 넣어 발효시킨 밑술(청주)에 가루 반죽을 더하는 1차 덧술에 이어 고두밥을 섞어 주는 2차 덧술 과정을 거친다. 전통 삼양주三讓酒 기법이다. 아래위 부분을 고루 발효시키고 묽게 하기 위함이다. 숙성에는 6개월에서 1년 간의 시간을 쓰고, 보관은 숨 쉬는 옹기를 썼다. “느리게,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평가를 받았다.

맹개마을에서 하루를 머무른 날은 보름이었다. 명월이 휘영청해지자 강가에 늘어선 아카시 하얀 꽃들이 더욱 빛을 발했다. 우리 일행은 준비해온 삼겹살을 구워 술자리를 꾸렸다. 박 대표가 자신의 작품, 53도 ‘진맥소주’ 두 병을 희사했다. 밀 향이 은은하게 코 끝에 남는 소주를 음미하다 달 한 번 쳐다보는 풍류를 즐겼다. 일행 하나가 아카시 가지를 꺾어왔다. 달콤한 꽃잎을 안주 삼다가 잔에 넣어 즉석 칵테일을 만들었다. 토닉 워터와 레몬을 넣어 칵테일로 마시는 것과 별개로 또 다른 감동이었다. 박 대표도 “아카시가 지천인데 여태 이 생각을 못 했다”며 “내년에는 아카시 칵테일을 선보여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밀과노닐다>가 하나씩 하나씩 만든 술은 막걸리, 오미자술, 국화주, 밀소주 등 6 종류이다. 주도도 6도서부터 53도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밀소주는 젊은 취향을 고려해 오크 숙성도 시도하고 있다. 마셔보니 싱글 몰트나 블렌드 위스키 맛이었다. 청정지역이라 양조장을 세우지 못해 40분 거리에 술도가를 두고 이곳에서는 보관만 한다. 한 해 대략 만 2천 병 정도 생산한다. 정직원 3 명의 콤팩트한 규모이다. 그때그때 ‘알바’ 생을 쓴다. 박 대표는 와인 소믈리에 자격도 땄고, 2018년에는 정식 술 제조 면허도 취득했다. 2019년에 ‘진맥소주’를 첫 작품으로 내놓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큰 힘을 얻었다. 2022년 4월 샌프란시스코 주류 품평회(SFWSC)에서 진맥소주53도가 가장 우수한 출품작에 주는 ‘더블 골드Double Gold’ 메달을, 40도는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해외 시장을 노려 개발한 오크 숙성 역시 ‘더블 골드’ 메달을 받았다. 2021년 런던 주류 품평회에서도 53도가 금상, 40도는 은상을 수상한 바 있어 ‘진맥소주’가 글로벌 스탠더드 반열에 진입했음을 만방에 알렸다. 30여 명의 심사위원이 세계 각국의 술 1만여 종류를 마시며 평점을 매긴 결과였다.
박 대표는 밀소주 덕분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마을에 친환경 집을 짓는 데 도움을 준 ‘흙건축연구소’ 김석균 이민선 부부는 삼해주三亥酒라는 술을 직접 빚는다. 고려 때부터 전해 내려온 궁중술로서 정월의 첫 돼지날亥日에 쌀가루와 누룩으로 담기 시작해 석 달간 돼지날마다 세 번에 걸쳐 빚는 전통주이다. 조선말 순조의 차녀 복온 공주가 안동 김 문門에 시집가며 민가에 전해졌다. 순창에서 술을 빚는 임숙주 대표와도 술을 매개로 친교를 맺었고, 밀 농사꾼이면서 한국가양주연구소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이하연 셰프와도 절친이다. 통영 거주 김은하 씨 부부와는 안팎이 모두 취향이 닮아 친해졌다. 김은하 씨는 매일 여기저기서 구한 식재료로 세트 메뉴를 구성해 예약 손님들에게 내놓는 셰프이고, 건축가인 남편은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를 만든다. 김 씨 부부는 밀소주 소문을 듣고 2019년 맹개마을까지 직접 찾아와 박 씨 부부와 단번에 의기투합했다. 박 대표 부부도 올 4월에 시간을 내어 통영으로 김 씨네를 찾았다. 네 사람은 김 셰프의 요리를 안주로 자기들이 직접 빚은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필자는 자기 브랜드의 술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파티를 상상하며 부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들 부부는 올 가을 맹개마을에서 지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두 집안의 술 콜라보를 펼칠 예정이다.

박성호 씨는 맹개마을에 정착한 2007년 이전엔 IT 전문가였다. 독일에서 제어공학을 공부하고 와서 IT 회사를 경영했다. 그러던 그를 이곳으로 부른 건 자연의 치유력이었다.
“처음에는 일이 재미있었는데 회사가 커지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컸어요. 게다가 경쟁이 치열한 IT 업계다 보니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며 저를 갉아먹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변화도 모색하고 힐링도 하고 싶어서 귀농하게 됐죠”
박성호 씨는 2021년 11월 농업진흥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농사에 뛰어든 지 15년 만이었다. 자신이 치유받고자 선택한 안식처에서 예기치 않게 일궈낸 결실이었다. ‘팜 투 글라스Farm to Glass’ 개념으로 술을 만드는 박 대표의 일은 ‘6차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1차인 농업과 2차인 제조업 그리고 3차인 서비스업을 겸하고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관광산업을 만드는 연유이다. 밀, 보리, 메밀 농사에 농가 스테이 그리고 양조업과 양조장 투어를 함께 엮고 있는 까닭이다. 스코틀랜드나 프랑스, 미국, 일본에서나 있는 양조장 투어가 곧 이 땅에서도 가능해진다.
박 대표가 지속적으로 갖는 화두는 ‘어떻게 하면 양조업을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생산면에서는 일기가 가장 큰 변수이다. 가뭄이 길어지면 밭을 갈아엎어야 해서 가뭄에 맞설 정도로 관개시설을 갖추는 게 제일 큰 현안이다. 홍수로 강물이 넘쳐 밀밭으로 범람할 경우를 대비해 유수留水 시설도 마련해야 한다. 양조장 투어의 콘텐츠를 보강하고, 술 구매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회원제 마케팅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진맥소주’가 5백 년을 이어가 그 전 5백 년과 합쳐 ‘천년의 술’이 되도록 정지 작업을 하고 싶은 게 그의 원대한 목표이다. 분명한 삶의 목표를 향해 겸허한 자세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박성호 대표의 의지를 응원한다. 미래 한국의 전설이 될 감동 스토리 하나가 지금 맹개마을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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