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닭을 먹는 20가지 방법 본문
꼭 삼복三伏이 아니더라도 여름 삼계탕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찹쌀과 인삼 넣은 이 닭백숙은 여름 보양식이다. 삼계탕의 인기는 먹거리가 다양해진 지금도 여전히 높다. 서울 서촌의 ‘토속촌’은 삼계탕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코로나 유행 전에는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손님의 절반을 차지해 삼계탕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 주곤 했다. 보통 1만 5천 원 이하의 가격이지만, 창덕궁 옆 ‘북촌삼계탕’은 전복과 낙지 등을 추가해 2만 4천 원을 받는다. 가격에 걸맞게 투입되는 전복, 낙지, 버섯 등 내용물이 손님들의 불평을 원천봉쇄한다.
닭백숙은 ‘백년손님’으로 떠받들던 사위에게 장모가 해주는 보양식으로 여겨질 만큼 귀한 음식이다. 백숙白熟은 ‘하얗게 익힌다’는 뜻으로 닭을 물에 넣고 삶는 요리이다. 하얀 백숙 살을 뜯어 소금에 찍어 먹고, 우러난 국물을 들이켜면 맛도 맛이려니와 몸속에 영양이 듬뿍 쌓이는 느낌을 받곤 한다. 백숙에는 옻나무나 엄나무, 헛개, 토복령을 함께 넣어 약성도 강화한다. 구기자, 목이버섯, 대추, 밤, 잣, 율무 등을 투입하기도 한다. 맛을 더하기 위함이다. 반년 이상 묵힌 갈치김치를 곁들이면 조합이 멋드러진다. 동과의 속을 파고서 그 속에 닭고기와 대추 마늘 엄나무 등 재료들을 넣어 닭백숙을 만들면 동과의 달콤새콤한 속살과 묵직한 닭 육수가 절묘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 오묘한 맛에 찬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황칠백숙’은 더 하다. 닭고기의 기름기를 빼고 잡내를 잡으며 육질을 부드럽게 해 주는 황칠은 제주도와 서남해 섬에만 자생해 맛 보기가 쉽지않다. “진시황이 ‘불로초不老草’로 여겨 즐겨 먹었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필자는 이 황칠백숙이 당길 때면 평창동의 ‘집밥 식당’을 찾는다. 예약을 하면 전남 영광 출신인 주인 김현미 씨가 솜씨를 발휘해 상을 내놓는다. 알배추 곁들여 먹는 백숙 맛도 좋지만, 황칠과 함께 우려낸 진한 육수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중국에도 ‘황둔지黄炖鷄’라 는 유사한 요리가 있다. ‘노릇하니 삶은 닭백숙’이라는 뜻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닭황숙’ 일 것이다.
선조들은 맛 외에 향기도 중시했다. ‘칠향계七香鷄’의 조리법이 <속방俗方>을 인용한 홍만선1643~1716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등장한다. “살진 묵은 암탉을 털을 뽑고 깨끗이 씻어 아래에 구멍을 내어, 그 창자와 밥통肚을 꺼내고, 삶아서 쓴 맛을 우려낸 도라지 한 사발, 생강 네댓 쪽, 파 한 줌, 천초川椒 한 줌, 청장淸漿 한 종지, 초·기름 각각 반 종지, 이 일곱 가지 맛을 맞추어 닭 배 안에 넣는다. 만약 허섭쓰레기滓 남은 것이 있으면 함께 사기 항아리나 오지항아리에 넣어 유지油紙로 구멍을 봉하고, 사기대접으로 덮어 솥물에 중탕해” 익은 뒤에 먹는데 “닭 맛 중에 제일 상품上品”으로 평가받았다.
오늘날엔 닭으로 만드는 요리 가운데 으뜸은 아무래도 치킨chicken 아닐까 싶다. 21세기 들어 치킨이 맥주와 짝을 이루는 이른바 ‘치맥 시대’가 전개되면서 한국은 ‘치킨의 나라’가 되었다. 2013년 김수현과 전지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극 중 ‘치맥’ 장면이 붐을 유도했고, 중국과 일본, 동남아, 중동, 남미, 유럽 등지에서도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 치킨의 원조는 1960년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영양 치킨’이다.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창업자 김태훈 씨가 외국의 치킨 바비큐를 보고 국내에 들여왔다. 닭을 찐 후 다시 튀기는 스코틀랜드 방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FC)을 탄생시켜 ‘미국 국민음식’의 자리를 꿰차고 있던 시기였다. 기존의 백숙이나 삼계탕, 기름 통닭과는 모양도 맛도 달랐던 까닭에 이 서구식 메뉴는 영양과 트렌드를 모두 잡음으로써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 트렌드에 후발주자로 이름을 올린 게 1976년에 서울 반포에서 시작된 마늘치킨이었다. 으깬 마늘 3~4kg에 후추와 소금을 넣고 서너 시간씩 버무려 만든 소스를 닭고기 겉에 발라 전기 오븐에서 구워냈다.
조선시대에도 프라이드 치킨이 있었다. ‘포계泡鷄’라는 이름의 이 요리는 ‘기름에 튀긴 닭고기’를 지칭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다양한 조리법을 소개한 15세기 중반 의관 전순의의 <산가요록山家要錄>에 “닭 고기를 24개로 토막을 내 참기름에 튀긴 후 간장을 발라 밀가루에 섞어 익힌 다음 식초를 가미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포계’ 요리는 “전순의가 개발해 세종대왕의 사랑을 받았다”고 야사는 전한다.
서양의 닭구이는 버터, 채소, 향신료가 맛을 지배한다. 달군 프라이 팬에 버터를 두르고 칼집 낸 닭가슴살을 넣어 소금 후추 마늘 등을 올리브 오일 뿌려 구워 놓는다. 그런 다음 역시 양파와 마늘 다짐을 버터로 구운 후 그 위에 물을 붓고 라임 파슬리를 얹은 뒤에 크림과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그다음 미리 구워놓은 닭가슴살을 크림 반죽에 넣어 데운 후 끄집어 내 스테이크처럼 잘라먹는다. 서양의 맛이 입안 가득 만족감을 준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치킨 왕국’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전 대통령 김영삼(YS)의 공이 크다고 여긴다. YS는 말주변이 약해 여러 일화를 낳았다. 연설문 담당 비서관이 문장 하나를 기가 막히게 써 줬다. 지금껏 인구에 회자되는 저 유명한 “여러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라는 명 문장이었다. 군사독재가 엄혹하던 시절, ‘독재 타도’를 시대적 소명으로 여기던 YS는 이 문장을 매우 좋아해 아무데서나 이 문장을 읊었다. 대중 연설은 물론이고 졸업식과 결혼식의 축사, 장례식 조사 때도 우물우물하다가 이 문장을 목청 높여 외쳤다. 그때마다 고양된 청중의 환호와 박수가 뒤따랐고, YS는 으쓱해하곤 했다. 많은 닭들이 희생됐지만, 그 덕에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치킨집들이 즐비해졌다고 믿거나말거나 한 생각을 해 본다.
중국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오래전부터 치킨을 해 먹었다. ‘쟈오화지叫花鷄’라는 요리인데, 닭을 연잎에 싸서 진흙으로 덮고 은은하게 구워 먹는 방식이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抗州 지역의 요리이다. 유래가 재미있다. 한 거지가 민가에서 닭을 훔쳐 땅 속에 숨겨 놓았는데, 다른 거지들이 모르고 그 위에 불을 지피면서 이 조리법이 개발됐다고 전한다. 닭털은 진흙에 달라붙어 저절로 뽑힌다. 연잎의 향이 가미되고 불맛이 밴다. 지금의 통닭구이나 로우스트 치킨Roast Chicken의 전신이라 볼 수 있다. 고급 식당에서도 취급하는데 닭 속에 여러 채소 소를 넣어 향을 더욱 깊게 배게 한다.
치킨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닭요리는 닭갈비일 것이다. 닭갈비를 먹는 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구이, 볶음, 전골이다. 구이는 양계장이 많은 전남 순천에 흔하다. 두툼하게 썰어 소금이나 간장, 마늘 등으로 간을 맞춰 굽는다. 젊은이들은 냉면을 같이 주문해 면에 싸서 먹는 걸 즐긴다. 조선 시대에도 닭고기에 소금을 뿌려 불판에서 굽는 계구鷄灸라는 요리가 있었다.
볶음탕은 닭고기를 뭉텅뭉텅 잘라 감자, 버섯, 당근, 마늘과 함께 자박하게 끓인다.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숙주를 듬뿍 넣고 호박이나 호박가루, 고추씨 분말 등을 첨가하면 또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다. 닭볶음탕의 사촌 격인 닭‘짜글이’도 별미이다. 천왕봉을 올랐다가 중산리로 하산해 지리산 자락에서 맛본 닭‘짜글이’는 황홀한 맛이었다. 산청 사는 친구가 굳이 그 집으로 안내할 만했다. 닭백숙은 쳐다보지도 않고 ‘짜글이’만 먹었을 정도였다. 고추는 쓰지 않고 직접 빚은 간장을 짭조름하니 가미한 게 구미를 당겼다.
‘춘천 닭갈비’는 춘천의 명물이다. 닭고기를 토막 내 야채와 함께 볶는 방식이다. 1970년 대 군인과 대학생들을 위해 개발된 저렴한 메뉴였다. 필자는 1973년에 춘천 ‘닭갈비 골목’서 처음 접했다. 그동안 백숙만 닭요리로 알다가 개안을 한 느낌이었다. 막걸리 안주로 좋았다.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TV 드라마 <겨울 연가>에 소개되면서 한류 붐을 타고 일본 중년 여성들이 찾기 시작해 유명해졌다. 춘천은 번화가인 명동을 포함해 여러 곳에 닭갈비집을 두고 있다.
닭불고기는 필자의 뇌리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음식이다. 1982년 하동 사는 지인이 “별미를 맛 보여 주겠다”라며 지리산 자락 해발 700m 칠불산 꼭대기로 안내를 했다. 호기심 가득한 채 오르니 화전민 부락 두어 채가 있는 풍경이 우리를 맞았다. 미리 통기를 했는지 서너 명이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숯불을 피우고 남자들은 고기를 포 뜨듯이 얇게 썰고 있었다. 닭고기였다. 방목하는 닭을 잡은 것이었다. 남자는 이어서 양념한 간장을 닭고기에 바르기 시작했다. 지인은 이 화전민들과 친하게 지내며 한 번씩 그들이 해 먹는 방식대로 닭불고기를 해줄 것을 주문하곤 하는 모양이었다. 닭을 불고기로 먹어본 적이 없던 필자의 궁금증은 컸다. 드디어 상이 차려지고 첫 젓가락질을 한 순간 입안이 감미로움으로 가득 차는 걸 느꼈다. 달았다. 지금껏 먹었던 닭요리는 까맣게 잊힐 정도로 치명적인 맛이었다. 산중이라 간장 외에는 별다른 양념이 가미된 게 없었는데도 그 정도 맛을 내는 게 기이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양념간장에 직접 채밀한 꿀을 조금 넣었다고 했다. 숯불 석쇠 위에 올려 구운 대파도 닭고기와 하모니가 잘 맞았다. 그날의 닭불고기 맛에 대한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 ‘춘천에 닭불고기집이 한 군데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선 불원천리 달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1960년 5월, 4·19 혁명 여파로 돼지고기 수급이 어려워지자 중앙로에서 돼지갈비집을 하던 김영석 사장이 닭고기로 대체하면서 닭불고기가 시작했다고 전한다. 닭고기를 저며 간장에 12시간 재워 숯불에 굽는 방식이다. 이 집을 알면서부터 필자에게 춘천은 더 이상 ‘닭갈비의 고장’이 아니었다.
후발주자로 뒤늦게 입맛을 잠식한 찜닭은 안동에서 시작해 북상한 메뉴이다. 1980년 대 안동 구시장 닭 골목의 식당에서 “닭볶음탕에 이런저런 재료를 첨가하다 탄생했다”라는 설이 전해진다. “치킨에 대응하기 위한 재래시장의 반란이었다”는 풀이이다. 닭을 찌는 요리여서 끓이는 닭볶음이나 간장에 조리는 닭조림과는 조금 차이를 보인다. 알감자, 대파, 당근, 버섯, 양배추, 고추 등 야채와 불린 당면, 가래떡 그리고 굴소스, 맛술, 통후추, 다진 마늘 등 향신료가 추가된다. 양념 맛이 골고루 배이게 하는 데는 물과 양념의 양, 불 조절 등이 좌우한다. 닭 손질도 맛을 좌우한다. 우유에 담그거나 청주를 이용해 깨끗이 불순물을 닦아내는 수고가 필요하다. 주말 낮 가족의 점심용으로 훌륭한 선택이 된다. 흑설탕 섞은 진간장으로 양념을 하고, 야채에 둥글게 썬 무를 추가하면 봉추찜닭이 된다. 조려진 무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지근한 물에 불린 당면을 넣어 함께 찌는데 닭보다도 이 당면 맛에 더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북 사람들은 토막 낸 닭고기 위에 부추를 가득 덮어 찌는 걸 찜닭이라 부른다. 자극적인 양념을 첨가하지 않아 찜닭이라기보다는 부추 곁들인 백숙에 가깝다. 닭고기를 부추에 감싸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채즙이 육즙과 하모니를 이루는 미감을 경험할 수 있다. 서울 약수동과 경기도 동두천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이북식 찜닭은 겨울 보양식으로 훌륭하다. 중국에도 ‘안동찜닭’과 유사한 음식이 있다. 산동 지역의 ‘황먼지黃燜鷄’이다. 닭다리살, 청고추, 당근, 버섯, 다진 파,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달걀, 간장, 설탕, 소금, 땅콩기름 등을 넣고 찐다.
닭죽, 닭전골, 닭개장, 닭칼국수 등은 모두 삶은 닭고기를 길이로 찢어서 끓여낸 것들이다. 닭살을 쌀과 함께 끓여내는 닭죽은 몸이 기우뚱할 때 원기를 되찾아 준다. 흔치 않은 닭전골은 삼척에서 즐겨 먹는 조리법인데 물을 자박하게 끓여 닭살을 익힌다. 양념 듬뿍 넣은 진한 맛도 좋지만 필자는 호박, 양파, 버섯 등 야채에 간장이나 후추를 살짝 가미한 맑은 전골을 선호한다. 개운함 때문이다. 닭개장은 1973년 동숭동에서 청소부들이 점심하러 가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갔다가 처음 접한 음식이었는데 필자의 뇌리에 지금껏 ‘맛 음식’으로 각인돼 있다. 닭고기가 육개장의 소고기 양지살을 대신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충무로 ‘사랑방 칼국수’ 집은 50, 60년 대 충무로가 한국 영화의 요람이던 시절부터 영업을 해온 집이다. 충무로를 지나칠 때면 다른 곳에서 약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을 기웃거리며 쳐다보게 되는 집이다. 김승호, 허장강, 구봉서, 김지미, 최무룡, 김헤정, 신성일, 엄앵란 같은 스타들이 즐겨 찾았던 노포이다. 이곳 칼국수에 들어있는 닭고기는 파간장에 찍어 먹는 게 이 집의 특징이다. 멸치 육수에 닭과 야채 그리고 면을 넣어 끓이는 종로통의 ‘닭한마리’ 메뉴는 이 집 칼국수의 변용으로 볼 수 있다. 닭살을 찢어서 만드는 요리 중에는 ‘닭초계무침’도 있다. 닭고기를 양념 가미한 오이, 당근, 양파, 상추 등 야채와 버무려 식초, 겨자를 쳐서 만든다. 새콤 달콤한 맛이어서 입맛 잃기 쉬운 여름 별식으로 맞춤하다. 유감스러운 점은 요리의 이름이다. 식초와 겨자가 들어가므로 초醋와 개芥를 쓰는 ‘닭초개무침’이 맞지만, 누군가가 ‘닭 계鷄’로 여겼는지 줄곧 ‘닭초계무침’으로 불러 고착화돼버렸다. 바로 잡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별 방도가 없다. 닭과 겨자에게 미안한 마음 크다. 진리는 왕왕 외로운 법이다.
닭요리는 21세기를 맞아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닭살에 게살을 섞어 전분 발라 튀기거나 노른자위 섞은 마요네즈 옷 입혀 튀김을 만든다. 밀가루 반죽 옷 입힌 닭고기 토막을 튀겨 양념 소스 끼얹는 중국요리 ‘깐풍기乾烹鷄’와 유사하다. 닭다리에 카레나 짜장을 투입하는 퓨전 닭요리도 젊은이들의 눈과 혀를 잡는다. 구운 닭날개에 익힌 카레를 넣어 약불에서 끓이는 방식이다. 방울토마토나 꽈리고추, 말린 망고나 파인애플 등을 첨가해도 좋지만, 다른 것 없이 그냥 카레만 입혀도 훌륭하다. 짜장도 닭다리에 발라 구운 후 다시 찌면 모양이나 불맛이 매력적인 닭요리가 탄생한다. 치킨에 꿀 견과류 등을 얹어 단맛을 극대화함으로써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기도 한다. 닭의 가슴 다리 날개 등 여러 부위를 염지한 후 한 꼬치에 복합적으로 꽂아 파, 마늘 등과 함께 구워 먹는 혁명적 발상도 동원된다. 닭살을 갈기갈기 찢어 채소와 함께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중국에도 ‘바이체지白切雞’라는 샐러드 류의 메뉴가 있다. 닭을 통째 백 탕으로 대강 삶아 차게 식혀서는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냉채冷菜이다. 중국 식탁에서 냉채는 ‘열을 가하지 않은 찬 음식’을 가리키는데 메인 요리를 먹기 전 입맛을 다지는 전채 성격이다. 바이체지는 아무런 양념을 가하지 않아 담백 고소해서 90년 대 중국 거주 시절 삶은 땅콩과 함께 필자의 맥주 안주로 훌륭했다.
경상남도 밀양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 닭을 먹는 특별한 방법 하나를 더 안다. ‘뱀 먹은 닭’을 요리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뒷산에서 마당으로 내려온 뱀이나 초가지붕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을 잡아 땅 속에 묻어두면 벌레가 생기는데, 그 유충을 닭이 쪼아 먹고는 햇볕 좋은 데 앉아 비실비실 졸면서 털이 빠진다. 뱀의 독을 이겨내느라 전투 모드에 돌입하는 까닭이다. 그 닭을 삶아 백숙으로 먹으면 걸러진 뱀의 독을 간접적으로 취하게 된다. 어른들은 그렇게 섭취하는 뱀독이 약성이 좋다고 여겼다. 종가 장손인 18년 연상의 6촌 형은 그 닭이 얼마나 힘이 좋은지를 떠벌리느라 “털 다 뽑힌 닭이 나르는 걸 봤다.”라고 허풍을 날려댔다. 그의 ‘후라이’를 들으며 어린 마음에도 볼 품 없는 알몸 닭이 비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뱀 대신 지네로 대신하기도 했다.
청춘을 되찾을 선식仙食은 없을 터이다. ‘뱀 먹은 닭’이 약성이 좋다 한들 어찌 묘약妙藥이 되겠는가. 그저 왁자지껄한 한낮의 풍경일 뿐이다. 당唐의 시인 리허李賀는 “수탉 울음 한 번에 천하가 밝는다雄鷄一聲天下白.”라고 읊었다. 닭은 못 먹어도 좋으니 이런 수탉의 큰 울음 한 번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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