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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어죽 - 情을 나누는 음식 본문

어죽 - 情을 나누는 음식

gubo54 2022. 11. 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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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달리다 어떤 장면과 마주치면 절로 눈길을 주게 되는 풍경 하나가 있다. 하천에서 천렵을 하는 장면이다. 두어 명이 막대를 움직여 고기를 몰고 한 사람은 족대를 들고 고기를 좇는다. 냇가에는 솥을 걸고 불을 피우고 있다. 그들은 곧 있을 어탕 파티를 벌이려는 것이다. 정겨운 풍경이다. 어탕의 맛을 떠올리면 이내 그들의 시간이 부러워진다.

 

20189월 경남 산청군 생초면의 한 어탕집을 찾았다. 경호강 상류에 위치한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어탕이 유명한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맑은 물에서 잡은 피라미, 갈겨니, 꺽지, 쉬리, 모래무지, 수수미꾸리, 돌고기, 동자개(빠가사리) 등으로 끓여낸다. 잡고기들을 삶아 뼈를 걸러내고 푹 고아서 대파, 고사리, 배추, 방앗잎 넣어 국수를 삶는다. 피라미 새끼를 일컫는 지우리고추장 무침과 튀김 그리고 찜을 곁들인다. 이 강에서 고기를 낚는 주인의 그물에 누치나 가물치, 쏘가리가 걸릴 때는 어탕의 내용이 고급스러워진다. 여름에는 수박 향기 은은한 은어가 올라와 회 맛이 일품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을 키운 음식들이다. 현지인들 뿐 아니라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도 들러 기를 보하곤 한다. 필자도 천왕봉을 올랐다 내려온 길이라 약처럼 여기고 어탕을 먹었다. 피로를 떨쳐내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닭국, 오리탕, 산채 등을 마다하고 어탕을 선택한 것이 적절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죽을 처음 접했던 때는 2001년 여름이었다. 바닷가 태생이라 해물은 즐기지만 민물 생선은 영 입에 맞지 않았던 까닭에 먹어 볼 기회가 없었다. 이 해 여름에 충북 영동에 별장을 갖고 있는 친구와 함께 영동 기행에 나섰다가 금강 상류에 있는 가선 식당이라는 어죽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단번에 그 맛에 반해버렸다. 내장을 제거한 민물 잡어를 민물새우 육수에 푹 고아 쌀이나 면과 근대, 배추, 버섯, 깻잎 등 채소를 넣고 팔팔 끓이다 다진 고추와 들깻가루, 참기름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완성한 것이었다. 중독성이 강해 한동안 그 맛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콩이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던 시절, 어죽은 다슬기탕과 함께 고단백 식품으로 영양가가 높아 천렵철 농가의 영양식 역할을 해왔다. ‘천렵국이라고도 부르는 배경이다. 전남 구례나 광양에서는 피라미로 끓인다 해서 피리탕’. 고양, 파주 등 경기도 북부에선 이것저것 모두 털어넣어 끓인다 해서 털레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어죽은 노동에 지친 농민들의 몸을 보양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멥쌀을 넣느냐 면을 넣느냐에 따라 어죽과 어탕국수로 나뉜다. 충청도 일대에서는 어탕국수를 생선국수라고도 부른다. 별다른 채소 없이 생선 육수에 면만 넣은 메뉴이다. 값도 6~7천 원으로 싼 편이다. 금강 유역은 민물고기가 종류별로 풍부해 일찍부터 생선을 이용한 먹거리가 향토음식으로 정착됐다. 충북 옥천의 청산면에는 선광집’, ‘청양식당등 생선국수집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가정집을 개조한 형태여서 손님들은 거실이나 안방에서 상을 받는 듯한 편안함을 누린다. 채썬 깻잎을 얹은 양념 튀김 도리뱅뱅을 안주로 막걸리를 한잔 한 후 생선국수로 식사를 마감하는 게 보통의 풍경이다. 어죽은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다. 필자는 쌀보다 면을 넣고 산초를 가미하는 편을 선호한다. 아삭이 고추 무침이나 젓갈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충청도에서 우연히 맛을 접한 후부터 필자의 어죽 편애가 시작됐다. 우선 서울부터 뒤지다가 행주산성, 안양, 수원까지 범위를 넓혀나갔지만 맞춤한 어죽 집을 찾지 못했다. 어종이 단순하고 고기 투여량이 적어 밍밍한 탓이었다. 그 즈음 출장길에 경남 함양에서 이곳 출신 후배의 안내로 한 어탕 집에 들어가 모처럼 한을 풀면서 그 후로 함양에 들르면 꼭 찾게 됐다. 지리산 맑은 계곡에서 건져올린 날모자(참마자)’, 피라미, 산메기 등에 된장 풀고 얼갈이 배추 넣어 끓여낸 어탕국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간이 잘 되어 달리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였지만 따라 나온 고추 버무림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과식을 하게 만들었다. 습관대로 제피를 첨가하니 더욱 당겼다. 배가 볼록해졌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포만감에 빠져들었던 날이었다. 그 후배가 나중에 서울 용문동에 함양서 공수해 온 민물고기로 어탕 집을 내 한동안 즐겨 찾아다녔으나 고객 확보에 실패해 오래 못 가 문을 닫으면서 여전히 어탕은 필자에게 귀한 음식으로 남았다.

 

그러던 차에 20038월 경기도 여주군 용담리에 살던 친구가 천렵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전날부터 개울에 어항을 넣어 놓았으니 버들치가 많이 잡혔을 거라고 충동질했다. 유혹 말고는 다 이겨낼 자신이 있는 나는 속절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앵자산 중턱 개울에 놓아둔 어항 속에는 버들치, 갈겨니 말고도 날렵한 산메기가 두 마리나 들어있었다. 솥을 걸고 고기들 손질해 채소와 양념, 국수와 수제비를 넣고 1시간쯤 끓였더니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산메기가 황토 냄새를 풀어내 어죽의 맛을 더욱 신선하게 해주었다. 개울가에 앉아 농주 곁들여 어죽으로 보양을 하고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한숨 잤다. 태평성세가 따로 없던 날이었다. 어죽이 제공하는 맛과 풍경은 그렇게 정겹고 감미로우며 평화롭다.

 

선조들도 그렇게 즐겼던 모양이다. 다산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가운데 ‘4월의 천렵편에 그 풍경이 구수하게 그려져 있다.

 

앞 내에 물이 주니 천렵川獵을 하여 보세.

해 길고 잔풍潺風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벽계수碧溪水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數罟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장소는 다산의 생가가 있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일 것이다. 다산도 머리 복잡하면 한양을 벗어나 도망쳐 와서 친구들과 천렵을 즐기던 곳이다. 아들도 아버지의 풍경을 따라 했을 터이다. “바람잔잔한 봄날 연꽃이 아직 지지 않은 맑은 시냇물에 촘촘한 그물을 둘러치고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 바위에 건 솥에서 끓여내니 이만한 맛이 어딨겠느냐라고 읊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농부의 소박한 즐거움이 물씬 묻어난다.

 

어죽은 추어탕처럼 만들기도 한다. 북한강변 화천발전소 근처에 자리 잡은 화천 어탕집은 진흙이 든 항아리에 빗물을 받아 만든 지장수에 황기와 산양삼, 오가피 등 약재를 넣고 다린 후 거기에 고사리를 투입해 독특한 탕 맛을 낸다. 산초를 곁들이면 추어탕 맛과 비슷해진다. 미꾸라지로도 어죽을 만든다. 대표적인 곳이 충남 광천 일대이다. 충청도 사투리를 채록하느라 장항선을 타고 충남을 다니던 시절, 광천 시내에서 어죽집을 발견하고선 입맛이 동해 들어갔더니 미꾸라지 어죽이었다. 재미난 것은 그 미꾸라지들을 호박이 들어 있는 어항 속에서 키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동강을 낸 호박의 속을 미꾸라지들이 달려들어 뜯어먹고 있었다. 호박은 미꾸라지에게 영양도 제공하고 흙내도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주인은 이 미꾸라지들을 갈아서 간장과 된장,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을 푼 육수에 애호박과 무, 대파, 깻잎, 방아잎, 부추 따위를 넣어 어죽 형태로 만들어 내놓았다. 애호박은 단맛, 무는 시원한 맛을 책임지고 있었다. 다데기와 들깨가루는 기호에 따른 선택사항이었다. 일군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 추어어죽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쩐득쩐득할 때는 이 놈이 최고여”, ! 몸을 싹 씻어준다니께

 

충청도 사투리는 정겨웠다. 뒤늦게 두 명이 들어와 땀을 닦더니 청풍명월들 아니랄까봐 연신 연설을 해댔다.

 

9월이면 가을 아녀? 근데 시방두 요로콤 푹혀 그래. 올해는 건너뛰고 그냥 가나벼

삼복이 질어지니께 더위도 같이 질어지는 게지

 

그러다 어죽 냄비를 들여다보더니

 

어라 싹 비웠구만 인정머리 없게스리. 아 다 먹어버렸잔여!”

 

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격렬한 불만 표출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했더니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조금 남은 어죽 국물에 공기밥을 붓더니 참기름과 김을 넣고 볶기 시작한 것이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열심히 숟가락을 휘저으며 밥을 볶던 사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죽은 끄트머리에 먹는 게 진짜제

 

그러자 다른 이가 받는다.

 

암만, 이게 죽이는 맛이제

 

먼저 먹고선 강장제를 먹었다고 포만감을 드러내던 사람들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마지막 처리가 어죽의 진미였던 셈이다. 어죽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서민들과 박자를 맞추어 온 옛날 맛이었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 일대에서는 뚜거리탕이 이 역할을 한다. 강바닥에서 잡은 꾹저구의 지역 사투리인 뚜거리를 갈아서 고추장국물과 함께 끓여낸 것이다. 고추, 마늘을 넣어 양념을 해서 먹는다. 제피나 산초가루를 넣으면 추어탕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맛을 낸다. 이 지역에서는 면이나 밥 대신 옥수수나 감자 수제비를 탕에 넣는 걸 즐긴다.

 

어죽은 딱히 계절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메뉴이다. 202011월 강원도 새이령 계곡에서도 이 메뉴가 등장했다. 옛 화전민 움막에 기거하는 명상가 백 씨와 함께 한 자리였다. 집 앞 개천은 맑았다. 가까운 곳에서 약초를 재배하는 정 씨가 들렀다가 제안을 했다. “‘피리(피라미)’를 잡아서 어죽을 끓여 먹자라는 것이었다. 백 씨는 심드렁해했지만, 필자는 어죽이라는 말에 즉각 호응했다. 70대 후반의 정 씨가 해머와 뜰채를 들고 집 앞 개울가로 우리를 끌고 가더니 실력 발휘를 했다. 해머로 바위를 때려 기절한 피라미와 버들치, 꺽지들을 뜰채로 주워 담으면 됐다. “어려서부터 자주 해온 작업이라며 정 씨는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스무 마리 정도를 낚았다. 백 씨의 굴피집 마당에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솥을 걸고선 정 씨가 또 한번 솜씨를 보였다. 우선 뜨거운 물로 고기들을 기절시킨 후 배를 따 내장을 제거하고 장작불로 끓여서는 물렁물렁해진 살을 숟가락으로 으깼다. 겨울 고기들은 비린내가 없었다. 고깃살에 무와 대파, 싸리버섯, 방아, 시래기 따위를 넣고 고춧가루, 다진 마늘, 국간장을 더한 후 국수를 투입해 어죽을 완성했다. 정 씨가 갑자기 생각난 듯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더니 반찬 한 가지를 들고 왔다. 야생 생강인 양하로 담근 장아찌였다. 어죽과 잘 맞았다. 정 씨는 이 맘때쯤 어죽 한 그릇 먹어주면 감기는 꼴을 볼래도 볼 수가 없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단백질을 섭취하기 어려운 산골 생활이라 수시로 어죽을 해먹지만 한번도 물려본 적이 없다고 덧붙인다. 백 씨가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터에서 길은 샘물로 직접 담근 막걸리를 대령했다. 모든 게 아쉬울 것 없이 다 갖추어졌다. 달빛이 우리 셋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어죽이 끝없이 당기던 잊지 못 할 밤이었다.

 

어죽 이야기를 쓰고 있자니 입이 당긴다. 일간 친구들과 마포의 히말라야 어죽집을 가야겠다. 충청도 참붕어를 주재료로 쓰고, 광천 토굴 새우젓과 안면도 송화소금을 사용하는 집이다. 탕도 걸쭉하지만 면도 푹 퍼진 소면이어서 제격인 집이다. 알감자 조림과 김무침 등 곁찬도 맛을 돕는다. 진즉에 있었으면 좋았을 집인데 2013년에서야 들어섰다. 소원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자리할 때는 매운탕이나 어죽만 한 음식이 없다, 여긴다. 여럿이서 함께 나누는 의 음식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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