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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젓갈 - 한민족의 으뜸 맛 본문

젓갈 - 한민족의 으뜸 맛

gubo54 2022. 11. 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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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이면 충남 강경은 젓갈로 뒤덮인다. ‘젓갈 축제때문이다. 새우젓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을에 잡은 추젓을 필두로 5월 새우로 담근 오젓, 6월의 육젓 등이 골고루 전시돼 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새우의 크기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6월 산, 5월 산, 9월 산 순서로 크다. 색깔은 육젓이 붉고 오젓은 핑크색, 추젓은 희다. 산란기인 6월에 잡힌 새우가 가장 살이 굵고 감칠맛과 단맛이 좋다고 한다. 새우젓 외에 황석어젓, 밴댕이젓 등도 보인다. 강경은 서해의 해물 집산 전진기지여서 조선시대에는 3대 시장에 속했을 정도로 대단했고, 지금도 젓갈 덕에 여전히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조선말 서유구1764~1846가 펴낸 <임원경제지>강경포 어선들은 청어와 조기를 많이 잡았고 소금이 많이 생산돼 다른 지방과 교역하였는데, 상품으로는 어염魚鹽을 많이 거래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어염은 소금에 절인 생선 즉, 젓갈을 지칭한다. 20세기 들어서도 1910년 강경시장 출시 상품 일람표에 젓갈류 5백 동 출시가 기록돼 있다. 이라는 단위는 당시 조기를 기준으로 천 마리에 해당한 양이었으므로 5백 동이면 그 양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강경포 객주들은 목포 군산 등의 영세한 선주들에게 미리 돈을 지불하고 새우를 비롯한 해산물의 90%를 사들여 이곳 소금을 끼얹은 후 충남 바닷가 폐광 굴 속에 보관해 발효시켰다. 지금도 강경 새우젓은 경매가격이 250kg한 동이에 2천만 원을 상회하는 위력을 보인다.

 

젓갈 시장 근처 유명하다경모네를 찾았다. 백반 상엔 17가지의 젓갈이 올랐다. 평소 자주 접하지 못한 바지락젓과 토하젓에 특히 젓가락이 자주 갔다. 예외없이 과식을 하고선 소화를 위해 하릴없이 강경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해야 했다. 강경 젓갈은 포구와 보관소의 거리가 가까워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토굴과 저온 창고에서 연중 섭씨 10~15도를 유지해 온도 변화에 따른 악화 요인이 없는 점도 주효한다. 요약하면 젓갈은 발효가 품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젓갈은 한민족에게 맛의 제왕이다. 이 젓갈은 식재료에 따라 어울리는 조합이 결정된다. 미역이나 곰피는 단연 멸치젓과 짝이 맞다. 흰쌀밥을 곰피에 싸서 멸치젓 살을 발라 얹어 먹으면 환상적이다. 밥 비벼 먹기에는 토하젓이나 해삼창자젓이 좋다. 추어탕에는 밴댕이젓이나 자리돔젓도 좋지만 슴슴한 바지락조개젓이 최상의 파트너가 아닌가 싶다. 호박잎을 삶아서 쌈밥을 먹을 때는 된장이나 양념장도 좋지만 역시 제맛은 젓갈이 낸다. 그 가운데서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조기젓이 으뜸이다. 조기젓은 단순히 짜기만 한 게 아니라 숙성에 따른 고소한 맛까지 겸비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선 돼지고기에 으레 멜젓(멸치젓)’이 따라 나온다. 강화도에서는 돼지갈비를 새우젓으로 끓인 젓국갈비가 지역 특산이다. , 청양초, 연두부, 애호박, 표고, 생강 등이 우정 출연한다. 한민족의 음식은 젓갈 없이는 맛을 내기 어렵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젓갈은 대체적으로 호남 지역에서 발달해왔다. 남도 사람들의 섬세함과 예술성이 음식에도 작용한 까닭 아닌가 여긴다. 이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손님 밥상에 젓갈이 빠지지 않았다. 토하젓, 게젓, 조기속젓, 갈치젓, 어리굴젓, 대구아가미젓, 중하새우젓, 돈배젓(전어젓), 진석화젓 등이다. 모두가 유혹적인 맛을 뽐내는 까닭에 절로 무릎을 치며 남도의 솜씨를 음미하게 된다. 남도의 젓갈 문화는 지금도 전승되고 있어 맛객들을 기쁘게 만든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 넓은 갯벌이 형성되고 해수 증발량이 많아 일찍부터 염전이 발달했다. 전남 신안군과 충남 서천군, 경기도 인천, 황해도 연백 등이다. 갯벌로 끌어들인 바닷물을 써레질을 반복한 후 가마솥에 끓여서 얻는 자염煮鹽이나 염전에 가둔 해수를 햇빛에 증발시켜 얻는 천일염天日鹽은 모두 감칠맛을 냈다. 이 서해안 소금은 고조선 이래로 치부의 수단이었을 만큼 귀한 존재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왕족이던 을불이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 탓에 남쪽으로 도망 와 소금장수를 하다 왕이 되는 일화를 낳기도 했다. 고구려 제15대 왕 미천왕이다. 소금 산지들은 젓갈이라는 음식을 낳고 음식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젓갈은 쌀 생산지역에서 예로부터 발달해온 음식이다.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 존재한다.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메콩강에서 잡은 작은 잡어들을 빻아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을 맛보고선 우리 젓갈과 맛이 비슷해 신기해하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는 건기인 겨울철에 잡은 생선을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한 다음 대소쿠리에 담아 밟고서는 하루 동안 햇볕에 건조한 후 소금에 절여서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뿌러혹을 캄보디아 사람들은 밥 먹을 때 우리의 김치처럼 주요 반찬으로 여긴다.

염장은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도 존재하지만, 젓갈 생산 지역의 대부분은 쌀 생산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 젓갈이 쌀밥을 맛있게 많이 먹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으로 짐작해도 좋을 듯싶다. 지금도 밥도둑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미루어 그 옛날에도 과식을 부르는 반찬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생선과 조개 등으로 만드는 젓갈은 맛도 맛이지만 단백질이 풍부해 농사꾼들의 영양도 챙겨주었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 베트남은 액젓만을 먹는다. 오직 한국과 캄보디아만이 생선 건더기를 취한다. 묘한 일치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건너와 수로왕首露王(재위 42~199)의 왕비가 되고 김해 허 씨의 시조가 된 허황옥許黃玉, 33~189이 한반도에 젓갈을 들여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황후가 인도 출신의 공주이지만, “캄보디아에 머물다 해류를 타고 한반도 남쪽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 까닭에, 그 편에 캄보디아의 뿌러혹이 우리에게 전래됐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된 허황옥이 과연 그랬을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인간과 음식의 관계에 습성과 시간이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필자가 처음으로 먹은 젓갈은 멸치젓이었다. 멸치를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집에서 많이 담았다. 멸치젓 한 마리를 통째로 접시에 놓고선 등뼈를 경계로 한쪽을 젓가락으로 발라내 배추 속이나 곰피에 싸서 밥과 함께 쌈으로 먹으면 꿀맛이었다. 지금은 접하기 어려워졌지만, 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의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연유로 이 음식을 1992년에 베이징의 북한 음식점에서 발견했을 때 반가움이 컸던 기억이 새롭다. 멸치젓만으로 밥공기를 세 그릇씩이나 비우는 괴력을 발휘했던 날이었다.

젓갈과의 두 번째 인연은 대구알젓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해안에서는 11월이면 대구가 많이 잡혔다. 대구알에 소금을 뿌려 배추에 싼 후 보름 정도 저장하면 맛있는 대구알젓이 탄생한다. 이 대구알젓은 명태알로 담그는 명란젓보다 매력적이라고 필자는 여긴다. 지금도 겨울철에 마산을 가게 되면 부둣가의 은하식당을 찾아 이 음식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대구 아가미를 염장한 장재젓은 대구 산지인 마산, 진주 등에서 즐겨 먹는다. 이 지역에서는 김치 담글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재료이다. 서울 삼각지 골목에 자리 잡은 노포 원 대구탕집에서도 이 장재젓을 얇게 썬 사각 무와 버무려 내놓는다. 미꾸라지를 맑게 끓여내는 경상도 식 추어탕도 젓갈이 좋은 조합을 이룬다. 성남의 남추어탕집의 참기름 두른 바지락조개젓이나 청도의 의성추어탕집에서 내놓는 진한 밴댕이젓 등이다. 모든 젓갈은 탕에 밥을 말아먹을 때 그 맛을 거든다. 빈대떡 같은 텁텁한 음식은 어리굴젓이나 갈치속젓 같은 젓갈이 수반돼야 물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다.

 

경남 남해 바닷가 사람들은 전어밤젓을 최고로 친다. 전어의 내장을 모아 풋고추와 마늘다짐, 고춧가루를 투입해 삭힌 것으로 깊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국수를 말아 함께 먹으면 특별한 미각 경험을 할 수 있다. 전남 강진 바닷가에서는 돈배젓을 특히 귀하게 여긴다. 씁쓸한 듯 고소한 맛도 맛이려니와 손톱 크기만 한 전어 창자를 하나씩 모아 담그는 수고로움 때문이다. 고추와 고춧가루 그리고 물엿을 가미해 6개월 정도 숙성시켜 죽고 못 사는전어젓을 담근다. 물엿은 단짠역할을 한다. 전어보다 젓갈 맛이 밴 고추 먹는 재미를 더 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웃한 고흥 사람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들은 단연 석화젓을 제일로 꼽는다. 색깔이 희냐 갈색이냐에 따라 백석화젓진석화젓으로 나눈다. 굴을 소금에 삭인 후 간장 달이듯이 국물만을 조려 굴 건지에 부어 열흘 정도 묵혀 완성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굴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다. 소금물에 씻은 굴알에다 무, , , , 마늘, 생강을 넣고 고춧가루로 버무리는 충남 서산의 어리굴젓보다 손이 더 가고 맛이 더 농축된 젓갈이다.

충남 태안반도 사람들은 갯벌에 흔한 칠게를 돌절구에 갈아 만든 기젓국(칠게젓)’에 질게 지은 보리밥을 넣어 비벼 먹는데 그 맛이 가히 사람 잡을 만하다. 비슷한 종류로 태안반도 사람들이 즐기는 꽃게무젓이 있다. 꽃게를 살만 꼭 짜서 거기에 생강, 마늘, 고춧가루 섞은 맛간장을 넣어 버무리면 되는 간편한 음식인데 다른 양념게장과 달리 숙성시키지 않고 바로 해 먹는다. 그냥 졸인 간장으로도 맛을 낸다. 식초를 가미하기 때문에 살균 과정이 이루어진다. 집안에 따라서는 양념에다 파와 무, 미나리를 넣어 함께 버무리기도 한다. 이곳 사람들은 무젓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충남과 전남 등 서해 갯벌에서는 반지 젓갈이 이름을 날린다. 밴댕이와 닮은꼴로 송어라고도 부르는 이 작은 생선은 회나 비빔도 맛을 내지만 으뜸은 젓갈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입맛 없거나 기력 떨어질 때 비상약처럼 찾는다. 뻘 새우 격인 쏙과 농게로 만든 젓갈도 특산이다. 양념장처럼 밥 비벼먹을 때 투입되는데 위력적인 맛을 자랑한다. 농게젓은 간즈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도 있다. 농게의 내장을 제거한 후 돌절구에 빻아 염장해 숙성시키는데 이 비법은 8세기에 지어진 <만엽집万葉集>에 그 제조법이 기록돼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맛과 향이 쌀밥과 잘 어우러지는 까닭에 일본에서도 밥도둑으로 여겨진다. 술안주로도 맞춤이어서 술도둑酒盜으로도 부른다.

 

남해에서 자라다 산란을 위해 서해로 이동하는 봄철 숭어의 알은 어란으로 탈바꿈된다. 서너 시간 소금에 절인 후 40일간의 건조 시간을 갖고 어란으로 변신한다. 단순한 작업일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알의 핏줄을 세심하게 제거하고, 흡수력이 좋은 삼나무 평대에 얹어 수분을 빼고, 아침저녁마다 소주로 겉면을 닦아주어 세균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란이 명란보다 더 대우받는 배경이다. 건조 작업은 온도와 습도, 햇빛과 별빛 그리고 바람이 청량하고 부드러운 산속이 더 좋다. 하얀 타우린이 표면에 형성되면 완성된 것이다. 일본의 큐슈 지역에서는 복어알도 어란으로 만들어 먹는다. 맹독을 품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복어알을 소금에 2년 정도 담그면 삼투압 작용으로 독성이 빠져나간다. 그런 연후에 다시 사케를 만들고 남은 술 지게미 속에 1년 정도 보관하면 독성이 완전히 제거된다. 복어 어란은 긴장하며 음미해야 하지만, 고급술 안주로 매우 인기가 높다.

 

젓갈을 유독 좋아하는 필자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젓갈 파티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2003년 가을날 입맛이 닮은꼴이었던 고 이수억 형이 젓갈 담가 놓았으니 먹으러 오라고 초청한 덕에 세상의 온통 젓갈을 모두 맛보는 전무후무한 경험을 했다. 그 선배는 김장이며 차돌박이 된장, 오이지, 오미자 차 등을 직접 만들 정도로 요리에 빼어난 솜씨를 발휘하곤 했지만, 젓갈까지 몸소 담그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터여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다. 선배는 전복젓, 멍게젓, 낙지젓, 전어밤젓, 대구알젓, 명란젓, 창란젓, 갈치속젓, 민어알젓, 명태아가미젓, 곤쟁이젓, 꼴뚜기젓, 굴젓, 해삼창자젓, 바지락젓, 육젓, 멸치젓, 황석어젓 등 모두 18가지 젓갈을 내놓아 필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서너 가지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날이 첫 대면이었다. 해삼창자젓과 멍게젓, 곤쟁이젓 등은 존재조차도 몰랐던 종류였다. 황석어젓은 풋고추를 함께 숙성시켜 맛이 기가 막혔다. 평소에는 예닐곱 종류만 담가 먹지만, 필자와의 파티를 위해 석 달 전부터 특별히 가짓수를 늘려 준비를 했다고 밝혀 감동을 더했다. 흥분한 필자는 온갖 젓갈을 두루 음미하며 밥을 세 그릇이나 비우게 되었다.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잡고 두 시간을 바닥에 드러누워 뒹구는 고통을 겪어야 했을 정도로 그날은 그야말로 젓갈과의 일대 전쟁을 치른 날로 필자의 음식사에 기록된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많은 젓갈을 발달시켜왔는지를 몸으로 확인한 날이기도 했다.

 

조기나 우럭, 농어 등은 삭혀도 쫀득한 육질을 유지한다. 이 생선들에 칼집을 내서 찜을 해 먹거나 젓국을 만들기도 한다. 새우젓은 말린 후 빻아서 파스타나 피자, 스테이크 등에 향신료처럼 뿌리기도 한다. 젓갈의 변용 사례들이다. 젓갈은 시대 흐름에 보조를 맞추는 이런 변주가 가능해서 생명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젓갈 샌드위치도 언젠가는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날이 올 것이다. 젓갈을 만드는 삭힘의 과정은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가자미, 조기, 호드기 같은 생선과 대합, 고동 등 패류를 삭혀서 만드는 식해, 게와 새우를 간장에 담가 만드는 게장이나 대하장 그리고 생선의 알젓도 젓갈류에 포함되고 보면, 젓갈은 확실히 한민족의 맛의 으뜸이며, 우리나라는 젓갈의 왕국이라 부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