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국수 – 외로움에 눈길을 줄 줄 아는 사람들의 음식 본문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로 소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치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는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 그런 슬픔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며 그들과 말없이 교감하고픈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바쁘고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과 모두가 홀로인 공간 속에서 외로움은 다른 외로움을, 슬픔은 다른 슬픔을 알아보고 조용히 손을 내밀어 서로를 쓰다듬고 토닥거린다. 세상살이는 이럴 때 비로소 정겹고 사람은 이럴 때 비로소 아름답다. 더듬이를 감추고 살던 사람들이 가만히 더듬이를 뻗어 다른 이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을 때 더러는 세상의 변방에서 상처 받은 채 삶을 견디는, 그 힘듦을 위로받는다.
자이언티가 ‘양화대교’를 부르면 팬들은 가사 단락의 끝 마디를 함께 따라 부른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택시기사를 하며 가정을 꾸렸던 아버지를 그리며 아픈 어머니에게 당부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내용이다. 노래의 진솔함은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대 위 가수의 슬픔은 무대 아래 청중의 슬픔과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말없이 껴안는다. 이 노래는 2015년 9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거미가 불러 역시 객석을 울렸다. 거미도 청중도 모두 이 노래가 갖는 슬픔에 침잠했다. 슬픔을 겪고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슬픔의 기억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슬픔의 힘으로 고난을 견디어 낼 줄 안다. 결코 사람들과 세상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처신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눈길은 깊고 그윽하다. 달의 이지러진 부분에까지도 시선을 주며 달을 제대로 그려낼 줄 안다. 그런 사람은 푸성귀 몇 단 팔려고 장터나 도로 한편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의 물건 값을 절대로 깎지 않는다. 그 할머니 뒤로 할머니의 어찌할 수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삶은 결코 허투루 하지 않다. 자이언티와 거미가 국수를 좋아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설정하고 싶은 까닭은 국수를 매개로 하는 풍경 속에는 어쩐지 물기와 온기가 있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국수는 세계인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 이름도 우리의 '국수', '면(麵)'을 비롯해 중국의 ‘미엔(面)’, 일본의 ‘멘(面)’, 베트남의 ‘포(Pho)’, 이태리의 ‘파스타(Pasta)’, 영어권의 ‘Noodle’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재미있는 이름은 불가(佛家)에서 사용하는 별칭 ‘승소(僧笑)’지 싶다. 스님마저 미소 짓게 만들 정도로 환영받는 음식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나라마다 처음엔 귀한 음식이어서 왕족과 귀족만이 즐길 수 있었던 역사도 닮았다. 지금은 전 세계의 가장 보편적인 서민 음식임에 틀림없다. 특히 1950년대에 일본에서 ‘라멘’이 생겨나면서부터 면은 서민의 가장 친근한 벗으로 자리 잡았다. 면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포에 수분이 들어가면 쉽고 빠른 시간에 면을 삶을 수 있는 원리를 이용한 라면은 발명과 동시에 순식간에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환영을 받았다. 해마다 1억 개의 라면이 판매되고 있을 정도이다.
어려웠던 시절을 경험한 중년 이상의 한국인에게도 국수는 각별한 음식이다. 멸치를 끓여 우려낸 다시에 면과 애호박, 양파 또는 부추를 넣고 양념간장을 곁들이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1960~70년대 무렵 친구들을 데리고 들이닥치면 어머니들은 금방 이런 국수를 끓여내시곤 했다. 삶아서 찬물에 헹군 국수면을 한입 맛볼 때의 즐거움은 아직 기억 속에 선연하다. 라면이 등장하기 전 시절의 자취생들은 하루 세 끼를 모두 국수로 때우기도 했다. 그렇게도 먹었으면 물리기도 하련만 이들은 지금도 국수 앞에서는 맥없이 젓가락을 들고 마는 ‘국수의 노예’들이 된다. 나 역시 자다가도 “국수!”하면 일어나 앉고, 국수를 마주하면 늘 과식을 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과식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슬며시 면 그릇을 들이미시곤 했다. 필자의 국수 사랑은 여전해서 지금도 혼자 시내를 걸을 때면 즐겨 국수집을 찾는다. 인테리어가 번듯한 집보다는 허름한 시장통이나 골목길에 자리 잡은 노포들이 더욱 당긴다. 그런 곳이라야 오래 끓인 다시가 제맛을 낸다고 느낀다. 서울 낙원동의 낙원상가 지하 시장도 자주 들러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아직도 2천 오백원에 국수를 말아준다. 시쳇말로 ‘가성비’가 좋은 곳이다. 가격을 감안해도 맛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국숫집과 이웃해 김치 가게가 있어 천 원이면 파김치, 무김치, 갓김치 등을 입맛대로 곁들일 수 있다. 노년층들이 주 고객들인 곳이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과 머리 고기에 막걸리를 한잔 하기에도 편안한 곳이다. 어떤 때는 비빔국수를 안주로 추가하기도 하는데, 한 젓가락씩 떠 먹으면 안주로도 손색이 없어 가난한 술상을 풍성하게 해 준다.
비빔국수는 잔치국수와는 또 다른 국수의 맛을 제공한다. 요체는 비빔양념장과 고명에 있다. 양념장은 파를 구워 기름을 낸 후 간장과 고추장, 설탕, 후추 등을 넣어 만든다. 고명은 야채 볶음과 소고기 볶음, 잔멸치 튀김, 구운 김, 삶은 계란, 오이 채 등을 올린다. 언젠가 여수에서 특산인 갓을 총총 썰어 돼지고기와 볶아 만든 고명을 맛보았는데 인상적이었다. 비빔국수는 특히 무더위 탓에 입맛 잃기 쉬운 여름철 훌륭한 식사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양과 맛이 든든하다.
식재료는 사람과 지역 특성에 따라 패러다임이 바뀐다. 안동에서는 점성이 약한 콩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썬 후 호박, 팽이버섯, 지단, 자반김, 배추 등을 고명으로 얹어 찬 멸치 육수에 말아 먹는 ‘건진국수’가 탄생했고, 멸치의 산지 경남 기장에서는 젓갈 멸치를 고명으로 얹은 엔초비 파스타도 등장했다. 전남 남원에서는 면을 햇볕과 그늘에 교대로 말림으로써 탄력성을 높여 성게알이나 계란노른자위를 곁들이는 파스타도 생겼다. 국수의 변신 사례들이다.
면의 역사는 유구하다. 인류는 BC 7000년 무렵 나일강 유역과 메소포타미아에서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BC 4000년 무렵에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 돌로 빻은 밀을 물과 섞어 반죽을 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반죽을 모닥불 바닥에 넣고 그 위에 재를 덮어 구워 빵을 만들었다. BC 3000년 경 유목민들이 밀을 중국에 들여왔고, BC 2000년 즈음 중국은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6세기 중국 농업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고대 중국 서북부 신장으로 이주해 온 유라시아 유목민들이 밀 농사를 지었고, ‘미라족’이라 불린 이 유목민들이 갈돌로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어 물과 섞어 반죽을 만든 후 두 손으로 비벼 가늘고 긴 모양의 면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면 제조법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한(漢) 나라로 전해졌다. ‘미라족’의 국수는 화석 형태로 보존돼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밀 재배부터 면이 탄생하기까지 5천 년이 걸렸으니 국수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왜 이 음식을 ‘국수’라고 부르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국어사전에도 한자 표기가 없다. ‘국수(掬水)’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두 손을 오므려 바가지처럼 물을 뜬다’는 뜻이어서 음식 이름으로는 적당치 않아 보인다. 곡식과 물이 결합된 음식이라는 의미로 ‘곡식 곡(穀)’ 자에 ‘물 수(水)’ 자가 합쳐진 ‘곡수(穀水)’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는 추측이 있다. 1919년에 쓰인 중국의 「동언고략」(東言考略)에 밀기울로 만든 곡자(穀子)를 ‘국(麴)’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 여기에 기초해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그 국(麴)에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든다는 뜻에서 ‘국수(麴水)’거나, 국(麴)을 재료로 손재주를 부려 만든다는 뜻에서, 손 수(手)가 합쳐져 ‘국수(麴手)’가 된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보기도 한다. 밀기울로 반죽을 만들어 도구를 이용해 누르고 밀거나 쳐서 널린 다음 칼로 썰거나 가락을 뽑은 후 삶아 찬물로 씻고 다시를 만들어 면 위에 부은 다음 그 위에 고명을 얹어 국수를 만드는 데는 유난히 손이 많이 간다는 조리 과정상의 특색을 반영한 유추이다. 고대 중국인이 멀리서 전래한 밀을 가루로 만들어 젓가락 굵기의 동그란 막대 모양으로 만든 후 물에서 불린 다음 손으로 납작하게 늘였다 해서 ‘수인병(水引餠)’ 즉, ‘물에 넣어 늘린 빵’으로 부른 걸 보면 아무래도 국수 이름에는 ‘물 수(水)’ 자가 들어가야 맞을 성도 싶다.
국수는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방문한 후 쓴 견문록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식미십여품이면식위선(食味十餘品而麵食爲先)’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걸 보면, 당시에 이미 국수가 존재했고, ‘맛의 으뜸’으로 대접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밀이 귀하던 때여서 면은 제례 때나 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음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수의 높은 품격은 조선조까지 이어져 왕실이나 반가의 행사 때만 올랐다. 그때 만들어진 ‘국수 먹는다’라는 표현은 지금껏 ‘결혼한다’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옛날에는 지렛대 원리로 반죽덩어리를 눌러 구멍으로 면 가락을 뽑는 ‘국수틀’조차 없던 시절이어서, 안반 위에 반죽을 얹어 홍두깨로 누르며 밀어서 칼로 잘라냈다. 이 누름 방식은 지금도 경상북도 안동 지역 종택들에 남아있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7: 3 비율로 섞어 반죽을 만든 후 이를 얼마나 얇게 눌러내느냐가 솜씨의 관건이 된다. 잘 누른 반죽은 그 너머로 글자가 비친다. 이어서 면의 두께가 가늘도록 썰어야 잘 만든 국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칼국수의 전신인 셈이다. 이 ‘누른국수’는 뜨거운 물에 삶은 후 건져 올려 찬물에 넣어 면발을 탱탱하게 만드는 2차 가공을 하면서부터 ‘건진국수’라 부르게 되었다. ‘안동국시’의 원형이다. 강에서 잡은 은어를 말려 다시를 냈다.이런 연유로 경북 지역의 국수 소비량은 높다. 대구는 서문시장에 수십 여 가게가 ‘누른국수(칼국수) 골목’을 이루고 있듯 전국 국수 소비량 1위를 자랑한다. 싸고 맛나서 2019년까지는 30분에 백 그릇, 하루에 2천 그릇씩 팔기도 했다. 누른국수와 건진국수는 이곳에서 아직도 그 이름을 유지하며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고 있다.
조선시대 가정에서 면을 뽑는 데는 아낙네들의 품이 많이 소요됐다. 1680년 안동 살던 정부인貞夫人 장張씨가 쓴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바가지에 구멍을 내 그 안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눌러 면을 뽑았다.”라는 사실이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제면기가 도입되면서 면 뽑기의 수고를 덜어주었고, 한국동란 와중에 미국의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대거 유입되면서 피난 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국수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때여서 국수로 끼니를 잇고, 좌판에 내다 팔았던 것이다. 당시 부산에는 곳곳에 영세한 규모의 면 제조소들이 있었다. 5,60년대의 면은 삶아내기만 한 상태에서도 맛나서 찬물에 헹구고 나면 한 입 얻어먹는 재미가 솔솔 했다. 면을 건조하는 과정에 소금기 묻은 바닷바람이 배어들어 짭조름한 맛을 냈다. 국수는 밀가루를 소금물에 반죽해 납작하게 펴고 잘라 말리는 제조 과정을 거친다. 수작업에 자연풍으로 건조한 면이 더 쫄깃한 식감을 준다. 슈퍼에만 가면 국수를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필자는 지금도 집 근처에 있는 국수 공장에서 봉지에 담아주는 수제면을 선호한다. 추억을 맛보고 싶은 때문이다. 국수 마니아들은 밀가루에 쌀, 흑미, 뽕잎, 단호박, 연잎 등을 섞은 다양한 면들에도 손을 뻗친다.
2020년 3월 10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들이 모두 견제받게 된 나날들 속에서도 계절은 제 역할을 다하느라 봄을 재촉하는 비를 뿌렸다. 어둑한 봄날 우울한 시간을 보내다 산책에 나섰다. 풍경들이 주는 위로에 고마워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발길이 재래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잠재의식 속에 그곳 국숫집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 게다. 여주인은 눈인사를 건네며 “오랜만에 오셨다.”라고 반겨준다. 국수를 시켜놓고 주변을 둘러본다.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들을 안고서 고개를 숙인 채 후루룩 면을 넘기고 있다. 매번 느끼는 바지만, 국수가 있는 풍경 속에 자리하면 절로 겸허해진다. 기교라고는 모르는 맑은 영혼들이 내뿜는 선한 기운을 받으면 세상은 또다시 따뜻하고 평화롭게 다가온다. 치유의 능력을 가진 국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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