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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청소부 김발렌티노 - 알콜 수렁에서 벗어나 거리를 쓴다 본문

청소부 김발렌티노 - 알콜 수렁에서 벗어나 거리를 쓴다

gubo54 2022. 11. 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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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24일 일요일, 서울에는 장대비가 내렸다. 인사동 거리는 쏟아지는 비 탓에 평소보다 인적이 뜸했다. 그 거리를 연두색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가 비로 쓸고 있었다.

 

비로 비를 쓸어요

 

우중에도 일을 하느냐는 필자의 말에 그가 씩 웃으며 던진 대답이다. 말이 재미나다고 느낀다. 유머를 아는 사람이다. 비는 빡빡 깎은 그의 민머리에 사정없이 쏟아져내려 보는 이를 안쓰럽게 한다. 비가 퍼붓는데도 중년의 뮤지션 하나가 색소폰을 불며 버스킹을 하고 있는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상자에 집어넣는다. 심성이 따뜻한 사람이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 결코 넉넉지 않을 형편인데도 타인의 외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가 궁금해졌다. 남다른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느껴졌다.

 

726일 인사동을 향하다 종로 2가서 작업을 하고 있는 그와 조우했다.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33도의 더위 속에서 그가 민첩하게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더위는 잊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작업에서 성스러움이 감지돼 양해를 구하고선 사진을 찍었다. 동작이 워낙 빨라 쫓아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순식간에 거리 청소를 마치고선 도로에 비치된 쓰레기통으로 다가가더니 열쇠로 아랫부분을 열어 쓰레기가 가득 찬 비닐을 꺼내 길가에 내려놓고 푸른색 새 비닐을 갈아 끼운다. 지정된 장소에 놓인 쓰레기 비닐은 청소차가 수거해간다. 아이스커피를 건네며 잠시 말을 붙였다. 종로구청 소속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인 그는 매일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종로 2가서 광화문까지 거리를 청소한다. 정규직의 작업이 오후 3시에 끝나면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다. 쓰레기 수거통과 빗자루 하나만을 들고 자기 구역을 돌며 휴지나 담배꽁초, 페트병, 커피 컵 등을 수거한다. 매일 움직이는 동선이 10km를 넘는다. 10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올해로 2년째 일하고 있다.

 

 

 

 

왠지 그의 스토리를 듣고 싶어져 청을 넣으니 이튿날 오전에 시간을 내주었다. 그의 일정을 좇아 옥수동 거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전철을 타고 이동해 인사동 찻집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김발렌티노1959~였다. 이름 역시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의 입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과거 이야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오랜 시간 알콜 중독자로 살았다는 것이 첫 번째 놀라움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당하기까지 했다니 중독의 정도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두 번째 놀라움은 불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었다. 성대 불문과를 나와 한국일보 기획실에 입사해 결혼을 하고선 주변의 권유로 <교차로>라는 무가지 신문을 맡아 경영을 맡기도 했고, 다시 취직을 반복하며 다양한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던 그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다름 아닌 모친의 사망이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었던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했던 아버지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열등감을 견뎌야 했다. 장남이었던 발렌티노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늘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겼다. 어머니는 검정고시 과정을 거쳐 초중고를 마치더니 67세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해 아들을 고양시켰다. 성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공부를 마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빛나는 대학 생활을 돕기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해갔다. 그러던 중에 생각지도 않게 어머니가 돌연사를 당하고 만다. 뇌출혈이었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아들은 울부짖었다. 이제 행복이 시작된다고 여기며 어머니와 함께 펼칠 보랏빛 꿈을 꿨는데 마른하늘의 청천벽력처럼 죽음이 둘을 갈라놓은 탓이었다. 그의 상실감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했다. 원상복구가 아니면 회복될 수 없을 정도였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아들은 급작히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나이 43세 때였다. 하늘을 원망하며 술에 취한 채로 절간이고 교회고 마구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다. 증오의 몸짓을 수반한 광란의 춤이었다. 자학하듯 술에 빠져 거리를 방황하고 다니는 그를 보다 못한 아내와 친구들이 정신병원에 그를 입원시켰다. 아내는 사람들의 시선 탓에 대인기피증에 시달렸고, 어린 두 아들도 주눅이 든 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10년이었다. 종로 거리에서 유적의 삶을 산 이유로 정신병원에서 그는 종로 김으로 통했다.

 

퇴원과 재입원을 여러 번 반복하다 다시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던 종로 김은 어떤 계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선 다시 한번 퇴원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정신병원 퇴원결정은 쉽지 않다. 직계 가족 두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만 병원도 풀어줄 수가 있다. 세 번을 좌절한 경험이 있는 가족으로서는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결단을 내려준 이가 큰아들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더 아버지를 믿어보자라며 가족을 설득하고 나섰다. 얼마 전 자신의 편지에 반응한 아버지의 모습을 병원 측으로부터 전해 듣고 신뢰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폐쇄병동 종로 김에게 건네진 아들의 편지는 아버지를 침몰시켰다.

 

“.... 아버지는 나의 반짝이는 별, 나는 아버지를 반짝이게 하는 밤하늘.”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종로 김두 눈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대체 누가 이고, 누가 밤하늘이란 말인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도, 비난하지도 않고 오히려 나의 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아버지가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는 밤하늘이 될 생각도 마다하지 않는다. 절절함으로 아버지를 감싸는 아들이 오히려 아버지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준 보석 같은 가족이 곁에 있었는데, 자신을 함부로 술에 던져버린 지난 시간이 아프게 떠올랐다. ‘종로 김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한참을 오열했다. 감동과 참회가 뒤섞인 울음이었다. 아무도 그 울음을 막지 못했다. 동료 환자들은 물론, 폐쇄회로로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병원 측도 아무런 제재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던 그의 마음의 문이 부서졌다. 어머니의 자리에서 비로소 아들과 아내를 보았다.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 어머니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음을 알게됐다. ‘닫음깨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어둠을 벗어나 빛으로, 아픔을 이기고 삶으로 돌아왔다.

 

20108, ‘종로 김은 아내와 두 아들에게 큰절을 올린 후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미카엘라 당신께는 남편 자격을, 가브리엘과 라파엘 두 아드님께는 아버지 자격을 깨끗이 반납합니다. 대신, 제가 다시 멋진 친구로 돌아오면 그때는 친구로 받아주십시오

 

이어서 삭발을 하고 한 잔이라도 술을 마시면 영구히 입원하겠다라는 각서를 쓴 후 정신병원을 나섰다. 어느새 52세가 돼 있었다. 그로부터 그는 단주斷酒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를 알콜 중독으로 내몰았던 상처의 근본이 치유된 게 아니었고, 여전히 그 상처들이 가슴을 후벼 파겠지만, 뿌리 깊은 돌부리를 파내려 하기보다는 흙으로 덮는 지혜를 발견하듯이, 그렇게 어머니를 덮음으로써 상처와 점차 결별할 수 있게 되었다. 술도 신기루처럼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어떤 절망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얻었다. 자신을 구원하려는 아들의 절절한 사랑을 보았음에랴.

 

종로 김은 두 번째 얻은 삶을 온전히 가족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는다. 오랜만에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부터 지은 죄가 많다는 생각에 일체의 말을 삼가하고 행동으로 가족의 신뢰를 얻기로 결심한다. 아내와 미혼의 두 아들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존댓말로 대한다. 열심히 사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늘 응원의 눈빛을 보낸다. 비록 가장이 아닌 친구로 처신해도 가족들은 건강하게 곁을 지키는 남편과 아버지를 고마워한다. 그의 핸드폰 컬러링이 영화 <대부>의 주제가 ‘Speak softly Love’인 것도 가족 때문이다. 10대 때 <대부>를 관람한 이후 다른 영화는 일체 보지 않았을 정도로 그 영화에 매료됐었는데, 퇴원 후에 다시 보다가 한 대사에 꽂혀서였다.

 

가족을 위하지 않으면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

 

극중 패밀리의 대부인 말론 브란도가 가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극중 대사인데,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제 핸드폰 벨이 울릴 때마다 그는 가족을 떠올린다.

 

퇴원하자마자 상실한 체력을 되찾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다. 유서 깊은 서대문의 극동체육관에서 스무 살 청년처럼 땀 흘리며 운동을 했다. 정신을 건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신체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20114월 말 그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몸져눕게 된다.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가족들은 처음에 또 술을 입에 댄 건가 의심하다가 차도가 없자 걱정하기 시작했다. 병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끙끙 앓으며 누워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기적처럼 복음이 찾아왔다. “하얀 옷을 입은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꿈에 찾아온것이었다. 그분은 나는 예수다. 너의 친구로 왔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부분만 또렷이 기억에 남았고, 놀라움과 황홀함 탓에 그 뒤에 주신 말씀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환희에 찼던 걸로 미루어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지난 잘못에 사함을 주신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섬망인양 자기 옆구리에 박힌 호스를 통해 초록색 물질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는 이색 체험을 했다. 그러고선 거짓말처럼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마음의 상처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성령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성령은 병든 이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치유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필자의 아내도 암 수술을 받은 후, 병실을 찾아온 자원봉사자의 성경이 몸 위에 얹히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몸을 순환하고 빠져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 경험을 갖고 있다. 예수 현몽을 계기로 종로 김은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20117월부터는 사람들에게 꽃과 시를 바치며 참회록을 쓰기 시작했다. 1,500일을 이어나갔다. 500일째 되던 날엔 특별히 5백 송이의 장미와 함께 참회록 <촛불1>을 써서 정진석 추기경에게 바쳤다.

 

그 누가 내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내리꽂는 저 심지 하나 박아다오.”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재다짐이었다. ‘과거와 단절한다는 의미로 이름도 바꾸고 싶어 새 이름을 물색했다. 천주교에 입문해 얻은 본명 미카엘은 천사여서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여겼다. 어느 순간 발렌티노가 눈에 들어왔다. 엄청 마셔댔던 양주 발렌타인Valentine’과 발음이 비슷해 친근한 느낌이 드는 데다 자기자신처럼 과거와 겉모습은 닮았으나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의미에서 발렌티노Valentino’를 선택했다. 20121224일 낮 12, 법원에서 김발렌티노로 개명이 받아들여지던 순간, 본당 성당을 찾아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후로 김발렌티노는 신실한 천주교 신자의 삶을 살고 있다. 유치장에 갇힌 알콜 중독자들을 교화하는 경찰 사목 일을 자청하고, 20218,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탄생 2백 주년 기념행사를 스스로 주관해 40일간 진행했으며, 58일에는 김수환 추기경 탄신 백 주년 기념행사도 가졌다. 김대건 신부 기념행사 때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협조를 얻어내 보신각 타종식을 가졌고, 김수환 추기경 기념행사 때는 노랫말과 곡을 짓고 부채와 엽서를 만들어 나누어주었다.

 

나는 바보입니다.

가끔은 칠흙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중략)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 세월 걸렸습니다.(하략)”

 

바보처럼 삽시다라는 노래는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말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발렌티노는 거리 청소를 하는데 가사와 멜로디가 들려와 흥얼거리다 그대로 옮겨 쓴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능력은 예수 현몽 이후 생겨났다. 세월호 1주기를 기린 추모시도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2015416, 304명의 어린 학생들을 수장시킨 세월호 비극이 발생한 지 1년이 되던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에게 시가 쏟아졌다. 그것을 받아 적어 지인이 있던 <내일신문>에 보냈더니 1면 머리기사로 실렸다. ‘세월호라는 단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은 채 세월호 망인들의 영혼을 달래는 글이었다. 저명 시인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김발렌티노가 누구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략)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는 산이 되었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 여자는 바다가 되었다. 남자의 산에는 메아리가 살고 여자의 바다에는 파도가 산다. 산정에 서서 골짜기마다 너의 이름을 외쳐보았다. 바닷가에 서서 물결마다 너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어떤 너는 산에 묻고 어떤 너는 바다에 묻었다.(하략)

 

세월호 사건은 발렌티노의 가슴 한 끝을 늘 저리게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시가 찾아온 것이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김발렌티노는 이제 하늘과 통공通共하는 존재가 된 것일까.

 

 

 

20157월부터는 인생은아름다워라라는 문화 카페를 운영했다. 자신은 마시지 않지만, 예술가들이 가장 평화롭게 차나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는 일기에 썼다.

 

해가 뜨니까 낮이 환하다. 달이 뜨니까 밤이 환하다. 네가 뜨니까 내가 환하다.”

 

2019년 장애인 예술가를 등에 업고 카페를 나서다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면서 카페는 접었다. 더 이상 카페에서 혼자 숙식을 해결하기가 힘들어져 그때 가족과 합류했다. 철심을 박아 걸을 만해지자 2020년 서울시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에 응시해 거리 청소에 나섰다. 불광동과 대학로에서 카페를 하며 가게 앞 거리를 비로 쓸던 습관이 직업이 됐다.

 

그는 최근 전공을 살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번역했다. 이미 백여 종 가까운 번역본이 나와있지만, 그는 자기 식으로 펴내 보려 한다. 그 소설 속에는 술 마시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주정뱅이가 등장하며, 행성의 평화를 위해 화산을 청소하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나와 특별함을 느낀다. 소설 전체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특히 꽃 한 송이가 어린 왕자의 화산 청소를 두고 청소만 잘하면 화산은 폭발하는 일 없이 굴뚝처럼 조용히 연기만 내뿜는다라고 여기는 대목에 큰 공감을 가진다. <어린 왕자> 원본을 직접 한글로 옮기고 삽화들도 다양하게 손수 그려 넣어 다른 버전과 차별을 두려 한다.

 

남다른 역경을 딛고 우뚝 선 김발렌티노는 세상의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이 쓰임이 되고 싶어 한다. 20219서울가톨릭연극협회(서가연)’가 무대에 올린 <요셉 임치백>에 포졸 역으로 입문한 것도 그런 실행의 하나이다. 앞으로도 서가연소속 배우로서 가톨릭의 평화와 사랑을 전파하는 데 일조하려 한다.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수감된 중독자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일도 한다. 남북 분단을 통일로 이끄는 데도 자신이 소용에 닿기를 희망한다.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극적인 날갯짓으로 다시 세상에 나온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의욕도 넘친다. “지구라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길을 잃거나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가 없도록역할하려고 한다.

 

 

 

2022728일 저녁, 목요일이라 쉬는 날인데도 폭염 속에서 인왕산 자락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마친 그를 인사동 골목 중국집 화원에서 기다려 만났다. 목장갑과 집게, 알루미늄 통을 든 채 나타났다. 통에는 지구별청소부라는 이름과 나 먼저 깨끗이, 이 나라 깨끗이, 이 세상 깨끗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어 청소작업을 신성시하는 그의 철학을 읽게 한다. 집게 길이가 짧아 보여 긴 걸 쓰지 그러냐고 했더니 허리를 구부려 땅에 경배하려 짧은 집게를 쓴다라고 말한다. 적게 먹기 위해 짜장면 양도 소량으로 주문한다. “몸이 가벼워야 정신도 맑아지기 때문이란다. 자리를 옮겨 루프탑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때마침 서쪽 하늘 구름이 실버라이닝을 보이며 서기瑞氣를 발해 우리는 똑같이 탄성을 내질렀다. 저녁해가 잿빛 구름의 배경에 숨어 그리는 은색 윤곽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가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환하게 웃는다. 하늘이 조화를 부리며 표하는 인사에 답하는 듯한 제스쳐였다. 필자는 그 모습 위에서 다시 한번 장남의 편지 문구를 떠올렸다. 그를 수렁에서 건져낸 아들의 마음이었고, 필자도 목이 메었던 문장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반짝이는 별, 나는 아버지를 반짝이게 하는 밤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