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백승혁 - 숲의 자유인 본문

필자를 포함해 걷기를 좋아하고 한잔하는 걸 즐기는 일군의 무리들이 주주당走酒黨을 결성해 활동한지가 수년 째이다. 2020년 9월 중순에는 미시령 넘어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계곡을 끼고 걷는 코스를 택했다. 옛 소금장수들이 동해안에서 인제로 오갈 때 이용하던 새이령 길이다. 양반네들이 말이나 노새를 끌고 지나기도 했다. 4시간이 소요되는 산길이다. 우리 일행은 그 길의 은밀한 아름다움에 취해 말을 잃고 걸었다.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비취빛 소沼가 전개되더니 다시 조붓한 전나무 숲길, 서어나무 군락지, 회색빛 점토길에 이어 소간령 꼭대기 성황당을 지난다. 달짝지근한 약수로 목을 추기고 다시 걸으면 옛날 주막이 들어서 있었던 산속 마장馬場터에 닿는다. 지금은 그 공간에 억새만 무성해 무심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한다. 크고 작은 19개의 개울을 건널 때는 징검다리를 잘 딛고 건너야 한다. 비가 내린 후에는 신발을 벗고 무릎까지 빠지며 건너야 할 성 싶은 하천도 서너 곳 있다. 이번 여름 퍼부어댄 큰 비로 길이 끊긴 곳도 여러 군데여서 창의력을 발휘해 걸음을 이어가야 한다. 워낙 오지여서 오가는 도중에 사람 한둘을 만날까 말까 할 정도로 한갓지다. 그렇게 1시간 여를 걷다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을 때는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나무로 지은 집 지붕에 표고버섯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널부러져 있어 사람이 사는 집임에 분명했다. 집 앞 마당에는 잔디를 깔아놓아 때깔 좋은 가을 하늘에 어울리는 초록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 환상적인 색채의 하모니에 더욱 끌린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조심조심 마당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집안에서 나온 사람은 한눈에 봐도 도인의 풍모였다. 백발에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었다. 잠시 수담을 나누는데 도인이 말했다. “막걸리 빚어놓은 게 조금 시긴했는데 한잔 들고들 가시려우?” 불감청이얼정 고소원이라. 마다할 우리가 아니었다. 푸른 마당은 갑자기 술판으로 변했다. 막걸리에 맞춰 우리가 갖고 있던 과자며 과일 따위가 안주로 둔갑했다. 백승혁 선생과의 조우였다. 우리 일행은 이것저것 궁금한 바를 물었고, 그는 유머러스하게 답해 보통 내공의 소유자가 아님을 짐작케했다. 그가 조금씩 풀어놓는 이바구들을 통해 그의 이력을 알 수 있었다. 보기보다는 젊은 69세로 경기도 시흥 소래 포구 출신의 독신이었다. 깡마른 체격과 흰 콧수염 탓에 가수 배철수 씨로 오인받기도 한다. 1980년에 이 길에 지금의 터를 마련했다. 북위 38도 이북에 속해 대공기관의 의심을 사면서 한동안 방첩 요원들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국립공원 영역을 벗어난 곳이어서 건축이 가능했다. 친구들이 소매를 걷어부치고 도와준 덕에 통나무 집을 지었다. 목재와 목재 사이에 진흙을 이개 틈을 메우는 방식이었다. 그러면 가옥이 숨을 쉰다. 안에는 난로가 놓여 있다. 산바람골이라 일년에 8월 사나흘을 제외하곤 늘 난로를 지핀다. 식탁이 놓인 공간을 사이에 두고 아궁이 딸린 방 두 개와 마루가 있다. 산나물과 버섯 그리고 가양주가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집을 짓고 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이 오지에서 텃밭 일구며 산나물 채집으로 살았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는 미국의 뉴욕과 세도나, 인도, 유럽, 에쿠아도르, 브라질 등에서 영적수행을 하며 방랑객으로 지냈다. 2000년에 잠시 들어왔다가 갑갑한 현실을 참지 못해 다시 나가 이역을 전전하다 돌아왔지만, 10월이면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겨울을 피해 남쪽 브라질로 향하곤 했다. 브라질리아 북쪽 평원에 자기 집이 있다. 그곳 오두막 살이도 날씨만 제외하면 이곳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거의 무위도식하며 지낸다. 젊을 때 사놓은 이곳 땅 4천 평을 조금씩 떼서 판 돈으로 비행기 표를 마련한다. 사찰에서 지부의 선禪 교육을 맡기며 경비를 보조하기도 한다. 그렇게 브라질에 가서 지내다 무료하면 남미 여러 나라에 있는 친구집들을 찾는다. 모두들 반겨주어 열흘이고 한달이고 머문다. 세계 어디를 가도 머물 데가 있는 사람이다.

이곳에 머무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기간에는 싸리나 표고, 영지 같은 버섯이나 더덕, 두릅, 산나물 등을 채집하고 벌을 쳐서 호구를 해결한다. 조금의 먹을 것만 확보되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병풍취 장아찌를 가장 즐긴다. 텃밭에는 고추며 애호박, 파, 깻잎, 감자 등이 심겨져 있다. 전기는 중고로 구입한 태양광 발전기로 해결한다. 발전량이 적어 겨우 전깃불을 켜는 정도만 가능하다. 화장실에는 톱밥을 비치해 인분 위에 뿌린다. 덮어두었다가 비료로 쓰는 것 같다. 세제도 예의가 아니라며 쓰지 않고 타고 남은 재를 이용한다. 부엌에 싱크대는 설치돼 있지만, 수도가 나오는 건 아니어서 설거지나 빨래는 집 앞 개울이나 따로 파놓은 샘에서 해결한다. 식수와 개숫물도 모두 샘에서 길어다 사용한다. 샘물이라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막걸리가 동이 나자 백 씨가 동충하초冬蟲夏草주가 있다며 손을 이끈다. 죽은 매미 몸에서 자란 버섯으로 만든 술이다. 술창고는 50여 미터 떨어진 숲속에 있었다. 옛날에 상인들을 위한 마장터가 있던 곳이다. 화전민이 살았음직한 초가집이 그의 별채이다. 전형적인 시골 봉노방 냄새가 진동한다. 부엌 앞에는 양동이에 흙을 발라 만든 화로와 찌그러진 세숫대야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집을 찬찬히 보니 굴피로 지붕을 엮은 형태여서 놀란다. 그 위를 다시 억새로 덮었다. 추위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처마 사이에 벌들이 집을 짓고 있다. 겨우살이 준비를 이미 마쳤는지 벌집은 조용하다. 여름철에는 방에서 자던 손님이 벌에 쏘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백담사 부근 등 설악산 안에 이런 굴피집이 몇 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 집이 유일하게 남았다. 백 씨는 한국동란 직후에 지어진 이런 문화유산을 귀중하게 여기며 보존하고 싶어 한다. 시월 중에 억새를 꺾어다 지붕을 새로 이을 생각이다. 집 옆에 키 큰 물박달 나무와 아름드리가 굵은 왕벚나무가 무슨 수호신들마냥 떡하니 좌우를 지키고 있다. 집 앞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어 풍경은 이곳이 더 나아보인다. 집과 개울 사이에는 수석을 주워 조각처럼 비치해 놓았다. 그의 표현처럼 “아저씨가 웃고 있는” 형상의 돌이다. 우리 일행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보인다”라고 인상을 말한다. 만물과 관계 맺기를 중시하는 주인의 마음이 감지된다.

주말이면 도시에서 지인들이 찾아오는데 그들 편에 세상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어쩌다 우리처럼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외롭지 않으냐?”는 우리 일행의 질문에 “나무도 있고 냇물도 있고 새도 있고 벌레도 있어 느낄 새가 없다”고 말한다. 존재를 사람에 국한하면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연을 넓히면 삼라만상이 다 친구를 대신한다는 것.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에게는 시냇물과 나무, 꽃, 벌레들이 모두 응시의 대상이 된다. “바람, 풀, 불꽃 등에게서 희열을 맛본다”라며 웃는다. 하늘 푸르른 날엔 바깥에 의자를 꺼내 놓고 앉아 먼산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선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앞산 봉우리 바위 위에 앉아 국선도 방식대로 호흡을 하며 몸에 기운을 불어넣는 수행도 일과이다. 적게 먹고 적게 움직이며 많이 생각한다.

이름 모를 날벌레 한 마리가 우리 사이를 헤집고 날아와 필자의 손등에 앉았다. 그는 ”길조吉兆“라며 반겼다. 초록색과 가지색이 섞인 풍뎅이과 벌레였다. 그도 처음 본다는 신기한 존재였다. 벌레 얘기를 하다 그가 버섯 이야기를 했다. 비 온 후면 지천인 버섯은 그의 주식이 되고 있다. 30분 정도를 걸어 가서 1 시간 정도 느타리, 노루궁뎅이 버섯 등을 채취해 와 말린다. 몸소 섭취하며 버섯 종류를 익히고 있는데 처음 발견한 버섯을 먹고선 복통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명현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책자에도 나오지 않아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 종류들도 많다. 이렇듯 우리 땅에는 벌레나 버섯의 예에서도 보듯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생명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과의 조우는 숲의 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오두막 뒤쪽에 있는 정자로 옮겨 두 통째 내온 막걸리를 계속 마셨다. 직접 빚어 내놓은 맵쌀 막걸리는 누룩 맛이 진해 맛이 깊었다. 물맛이 좋은 게 비결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면 여기에 정착해 막걸리를 빚을 생각도 한다. 달고 청정한 샘물이 큰 힘이 되는 까닭이다. 엄선한 친구들 하고만 즐길 생각이다. 정자 뒤편은 계곡물이 소를 이루고 있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준다. 자기 목욕탕이라 했다. 인적이 없어 여름에는 발가벗고 목욕을 즐긴다. 자급자족의 검소한 삶과 내면의 풍요로움은 미국의 전설적인 숲속 자유인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추구했던 삶의 형태이다. 소로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Walden 호숫가에 살면서 숲과 호수가 시시각각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들과 소리, 냄새 등을 음미하며 자연과 친교했다. 백 씨 역시 소로와 다르지 않아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벗하며 지낸다. 소로가 <월든: 숲 속의 생활>이나 <매사추세츠 자연사>, <겨울 산책> 같은 글을 쓰며 유위有爲의 시간을 가진 데 비하면, 백씨는 철저히 무위無爲의 삶을 사는 셈이다. 유무위의 차이는 있지만, 자연과 일체감을 가지며 미니멀minimal한 삶을 사는 점은 소로와 놀랍도록 닮아서 그를 ‘소로의 한국판’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싶었다. 세속의 삶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숲 속 자유인의 삶이다. 백 씨의 주된 관심사는 휴먼 디자인Human Design이다. 인간의 심성이 단순히 유전자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삼라만상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는 요지이다. 해, 달, 별, 땅, 나무, 물, 사람 등이 내뿜는 에너지의 순환 관계 속에서 인성과 인격이 설계된다는 것이다. 밤의 우울이 낮에는 사라지던 경험들이 필자에게도 있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사물마다의 독특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 가짐이 선행되어야 할 듯 싶다. 그 수련 방법이 명상일 터이다. 2018년 라 우루 후와 린다 버넬의 공저 <휴먼디자인>을 번역해 출간했다.

자유인의 삶이 일반인과 차이를 보이는 점 가운데 하나가 관조의 습관이다. 백씨 역시 물가에서 마당에서 정자에서 밭에서 관조의 시간을 갖는다. 관조하는 자세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온갖 장애 요소들을 차단해준다. 편견이나 선입견 따위이다. 관조가 들어 대상의 미묘한 차이들을 파악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런 자세는 고정관념이 파고들어 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연암 박지원은 관조를 ‘마음을 고요히 가지는 것’이라는 뜻의 명심冥心으로 풀이했다. 그릇된 가치관이나 인식의 오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인식상의 무기로 여긴 것이다. 그의 손자로 19세기 말 실학파의 리더였던 박제가의 시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에도 관조의 중요성이 묘사된다.
毋將一紅字 泛稱滿眼華
花鬚有多少 細心一看過
붉을 홍 한 자만으로 눈 가득한 꽃들을 칭하지 마라
꽃 수술만 해도 많고 적은 게 있으니
그들의 마음 속에는 창窓이 있게 마련이다. 공기와 풍경을 제공하는 장치가 창이지만, 관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유의 수단이 된다. 관조자는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면서 연결성과 균형감을 갖춘다. 마음 속에 구축한 인식의 창을 통해서이다. 창밖 세상은 이들에게 보편성과 개별성을 함께 키워준다. 보편성 가운데서 개별적 깨달음을 발견하는 것은 오랜 관조 습관에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다.

그가 우리 모임의 구성과 활동 내용을 듣더니 자기도 끼면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우리 일행은 만장일치로 그를 고문으로 추대했다. 한 번씩 이곳에서 숙박을 하는 모임도 가질 수 있겠다 싶어 설레었다. 바람이 불자 지붕 위에서 말리던 표고버섯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다시 주워서 올리기 귀찮으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는 말에 우리는 주섬주섬 귀한 버섯을 한 웅큼씩 챙겼다. 된장에 넣어 끓이면 맛을 더 할 것이라 일러준다. 잠시 쉬었다 간다는 게 어느덧 세 시간이나 흘렀다. 서둘러 떠나려는 우리를 향해 “공간이 넉넉하니 일박하고 가지 그러냐?”고 슬며시 붙잡는다. 우리는 10월 중에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고 길을 떠났다. 손님을 신으로 여긴다는 생각 답게 떠나는 우리를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 된다. 고독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난 자리에 아쉬움이 이는 건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돌아오는 내내 모두가 그를 진인眞人이라 칭하며, 그 진인에 관한 인상기를 끊이지 않고 애기한 걸 보면, 확실히 그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 행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였음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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