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창운蒼韻 - 푸른 노래를 품고 사는 가객 본문

한동안 서울 논현동의 한 건물 야외 주차장에 열심히 다닌 적이 있다. 백 평 남짓한 그 주차장을 관리하는 친구 때문이었다. 장난감 같은 이동형 초소에 머물면서 차를 넣고 빼고 하는 게 친구의 업무였다. 막간의 시간에는 초소 안에 비치한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도 하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삽화도 그리곤 했다. 내가 찾아가면 초소는 카페로 변모한다. 야외 테이블을 가져와 파라솔을 펴고 옆 가게에서 맥주나 소주를 사 온다. 가스 불판을 꺼내 꽁치통조림과 김치로 찌개를 끓인다. 제대로 생선찌개를 끓이려면 대파 양파에 다진 마늘과 간장, 고춧가루, 액젓 등이 필요하지만, 야전(?)에서는 그 모든 걸 김치 하나로 대체할 수 있다. 안주가 완성되면 초소 안에 있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일이 이어진다. 인터넷서 올드 팝을 찾아 틀면, 조립 주차장 포차는 음악 카페가 부럽지 않게 된다.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때그때 듣고 싶은 곡들을 찾아 분위기를 돋운다. 나의 애창곡인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의 ‘My old paint’는 거의 시그널 뮤직에 가까웠다. 평생을 함께 해온 늙은 노새를 걱정하는 주인의 마음을 담은 노래이다. 빗방울이 돋으면 브룩 빈튼Brook Benton의 ‘Rainy Night in Georgia’나 송창식의 ‘비의 나그네’를 들었다. 비 오는 밤 고향으로 돌아온 ‘루저Loser’의 쓸쓸함이나, 비 내리는 저녁에 찾아왔다 떠나가는 님을 향한 마음을 담은 곡들이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도 자리를 걷지 않고 빌리 할러데이Billy Holiday의 I’ve been a Fool to love You를 들으며 감미로운 재즈 선율에 몸과 마음을 내맡겼다. 노래들은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술에 젖은 몸 안으로 흡수됐고, 우리는 그걸 즐겼다. 그것은 마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84년 작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 1943~)가 아편 소굴에 들어가 몽환적인 꿈을 꾸는 장면을 연상시킬만했다. 괴로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영화 속 드니로의 몸부림에서는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드니로의 퀭한 얼굴이 클로즈 업되면 공허한 남가일몽南柯一夢의 편린들이 드러난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살아오다 노년을 맞은 암흑가의 사나이가 아편을 흡입한 후 몽롱해지는 의식의 끝을 붙잡고 떠올리는 것은 소년 시절부터 평생을 가슴에 품었던 소녀의 모습이다. 도발적이면서 반항적인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 1970~)가 그 소녀를 연기했다. 소녀의 춤추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면서 시작된 드니로의 첫사랑은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마침내 복수를 하지만 마음은 허하기만 하다. 그가 일생을 통해 원했던 것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마음을 주었던 소녀였음을 확인하며 관객도 주인공의 허무감을 공감한다. 논현동 주차장의 우리에게 노래는 영화 속 아편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올드 팝에 기대 아스라한 시간 저편으로 날아가 청춘의 모습으로 부활하곤 했다. 차림이라곤 꽁치김치찌개가 유일했지만, 번개 통기를 받은 친구들도 기꺼이 동참해주었다. 그들이 당도하면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가게에서 꽁치통조림을 하나 더 사다 냄비에 넣으면 또 몇 순배 술잔이 돌았다.
그와 나는 노래 부르는 집에서 우연히 만나 평생지기가 된 사이이다. 서로가 50줄이던 어느 해 가을 서울 강남의 한 주점에서 모자를 눌러쓴 청바지 차림의 그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열흘쯤 뒤 다시 들른 그 집에서 또 그를 발견하게 되어 합석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옷차림은 바뀌었지만 노래 솜씨가 며칠 전의 그 인상을 복원시켜주었다. CCR의 ‘Long as I can see the light’을 부르는 사람은 흔치 않은 까닭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67년부터 음악의 길에 뛰어든 그룹사운드 베이시스트 출신이었다. 미 8군 오디션을 통과해 미군부대를 순회하며 연주 생활을 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80년 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갑갑함을 견디지 못해 가족을 남겨둔 채 혼자 한국으로 나와 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늘 노래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와는 잘 맞았다. 그로부터 지금껏 우리 사이에는 늘 노래가 있었다. 우리는 그의 기타 반주에 맞춰 자주 노래를 부르곤 했다. 노래집에서는 Bee Gees나 C.C.R, 소리새 등의 곡으로 듀엣을 부르기도 했다. 그와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시간이 우리 편이었다. 나는 그에게 ‘푸른 노래’라는 뜻의 ‘창운菖韻’을 호號로 선물했다.

그는 예민하고 섬세해서 글과 그림에 묘사력이 뛰어났다. 남다른 촉수로 그려낸 그의 시와 데생은 맛이 깊어 접할 때마다 술 생각이 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긴 시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그 옛날의 펜팔 친구처럼 서로를 표현했다. 창운도 그 시간을 좋아해서 우리가 주고받은 수백 페이지 분량의 편지들을 출력해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최근 어머니를 여읜 그에게 필자는 가족사를 되돌아보는 자전적 소설을 써볼 것을 권하고 있다. 미국 소설가 토마스 울프(Thomas Wolfe, 1900~38)의 1926년 작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Look back homeward, Angel> 같은 감수성 짙은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 믿는다.

창운은 파주 아울렛의 음식점 매니저로 3년 간 일하다 다시 의왕의 바라산 자연휴양림 내에 위치한 편의점의 관리자로 일자리를 옮겼다. 찬찬하고 꼼꼼한 그의 성격 덕에 일하는 곳마다 성과를 냈다. 바라산 편의점은 그가 좋아하는 환경 속에 있어 만족감을 더했다. 한가한 평일 낮 시간에는 기타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타를 잡는다. 그의 분신인 까닭이다. 그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해하는 마음의 파문이 보는 이에게도 전달된다. 그가 바라산에 둥지를 틀던 무렵, 때맞춰 가까운 평촌으로 이사 간 필자는 한 달에 서너 차례씩 집 앞 모락산에서 시작해 백운산과 바라산을 종주해 그의 가게를 찾곤 했다. 4시간 반이 걸리는 이 긴 코스를 걸을 때마다 2백여 년 전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초의(草衣, 1786~1866) 선사의 교유를 떠올리곤 했다. 초의는 해남 일지암에서 정진하던 시절 차를 들고선 한참 발품을 팔아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찾곤 했다. 유배 중이던 다산茶山은 그 차로 속병과 화병을 달랬다. 다산은 스물네 살의 젊은 스님에게 경학을 가르쳤고, 그 덕에 초의는 다선일체茶禪一體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찻잎을 재배하고 따고 덖어 차로 만들고 음미하는 모든 시간을 수련의 과정으로 여긴 것이다. 다산과 초의선사의 인연은 다산의 아들 학연學淵을 통해 추사秋史와도 이어진다. 동갑내기였던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지란지교芝蘭之交 역시 눈물겹다. 초의는 제주도로 건너가 산방굴사에서 여섯 달을 머무르며 귀양살이 중이던 추사를 돌보았다. 이 시기 초의의 권유로 추사는 <밀다경密多經>을 집필한다. 초의가 해남으로 돌아간 후 어느 해 입춘 추사는 빗물을 밤새 깨끗한 대접에 받아 그 물로 먹을 갈아서는 초의에게 편지를 썼다. 가장 먼저 도달한 봄을 친구에게 선물하고픈 마음의 발로였다. 봄비로 쓴 편지였다.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고려 패망 후 유신들이 올라 멀리 개경을 바라보았다 해서 ‘바라산’이라고 부른 휴양림 입구의 가게에 도착하면 창운이 반색을 하며 반겨준다. 우리는 가게 바깥에 서둘러 자리를 만들고 그 옛날처럼 꽁치김치찌개 파티를 벌인다. 과거와 달라진 건 사 먹던 재료들을 이제는 자체 조달한다는 점이었다. 몇 시간을 걸어 피로해진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산천을 바라보며 술잔을 넘기는 맛은 특별했다. 그가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살풋 잠에 빠지기도 했다. 산의 정적 속에 평화와 휴식이 있는 곳이었다. 변함없이 우리의 술자리에는 음악이 흘렀다. 가게 안에 비치한 CD 플레이어를 통해서였다.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둘만이 갖는 술자리가 간결하고 고상하다는 기분을 갖는다. “차茶는 둘이 마셔야 고상하다.”라고 강조한 초의 선사의 가르침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선한 마음씨의 소유자답게 창운은 매주 가게 입구에 시 한 편씩을 손으로 써서 내걸었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였다. 어느 땐가 찾았을 때는 나희덕의 시가 맞아주었다.
어렵게 멀어져 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중략)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 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나희덕, <기억의 자리>
나희덕의 시는 “참다운 안식이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파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이탈리아 종교철학자)의 비범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시인은 “인생은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지난한 여정이며, 여행도 그 진정한 가치는 떠나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시간 속에 있다.”라고 읊고 있다. 찾으려고 떠났던 것을 돌아와서야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의 시간도 그러했고, 그와 나의 시간도 마찬가지 여정 속에 있었다.

이제는 그럴 환경을 다소 상실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그때 그 풍경을 재현해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언제나 찾을 수 있고, 소박한 술자리를 탓하지 않으며, 함께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재확인하고 싶어 진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이 되지 않는 친구가...
(하략)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2020년 가을, 필자는 절친 평산과 함께 의왕으로 창운을 찾아갔다. 70대에 들어선 창운은 임파선 암으로 고생을 한 터라 코로나 바이러스에 매우 신경을 쓴다. 우리는 그의 아파트 바로 옆 공기 좋고 경관 푸른 공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캘리포니아 와인 Kirkland를 한 병 들고 내려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잔을 부딪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가 다시 집으로 올라가더니 기타를 들고 내려왔다. 우리는 그의 기타 반주에 맞춰 옛 노래들을 불렀다. 다시 푸르러지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그를 만날 때마다 필자는 언젠가 받았던 그의 송년 메일 문구를 떠올리며 새삼 그를 바라보곤 한다.
“무한의 우주...그 광활함 속에서 티끌보다 작은 행성 -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 위에, 그것도 아시아 대륙 북동쪽 끄트머리 분단 대한민국의 북이 아닌 남쪽 땅 서울에서 먼저 나지도 않고 뒤에 나지도 않고 같은 세상에 태어나 그 수많은 인파 속을 헤치고 다니다 우린 그렇게 만났습니다. 참 기묘하죠?^^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인연.. 사람의 따뜻한 정리와 결 좋은 생각의 모음으로 한층 더 풍요로운 한 해.. 또 함께 가꾸어 가길 바라봅니다. 지난 한 해 덕분에 진정 행복했습니다.^^”

봄이 오면 창운과 다시 꽁치김치찌개 파티를 갖고 싶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맺어진 좋은 인연에 감사하고, 결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싶다. 그가 즐겨 부르는 ‘Long as I can see the light’의 노랫말처럼,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마음 속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늘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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