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숙명의 섬 지킴이 - 강제윤 한국섬진흥원 이사 본문

필자의 생각에 ‘섬’의 어원은 수평의 바다 위에 수직으로 일어선 존재라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그 섬의 원 뜻은 잊혀진 채 지금은 단지 멀리 있고 고적하며 고립된 공간이라는 어감을 풍긴다. 낙도에서 밤을 지새 본 사람은 섬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가슴이 허해질 정도로 엄습해오는 칠흑 밤의 고독감은 감내하기 쉽지 않다. 해산물이 제법 큰 돈이 되면서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섬은 정주하기에 아직도 불편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섬에 대한 육지의 무관심과 차별 탓이다. 지자체의 정책 순위에서도 늘 푸대접을 받아왔다. 더 이상은 아니다. 2021년 10월 8일 오랜 세월 방치돼온 섬의 문제들을 살피고 보듬어 줄 국가기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섬진흥원이다. 섬 행정의 방향타 역할을 할 이 사령탑을 발족시키는 데는 한 개인의 역할이 컸다. 섬 지킴이로 살아온 강제윤 씨다.
2018년 페이스북에서 한 장년의 포스팅을 접하고선 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경 쓴 얼굴에 수염을 기른 그의 표정은 차분하고 따뜻하며 진지한 사람의 풍모를 풍겼다. 섬을 돌아다니며 풍경과 음식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매화도의 소박한 성당과 팽나무, 관매도의 유채와 생선 건정, 우이도의 흰 염소, 불음도의 은행나무, 추도의 돌담 등에 시선을 뺏겼다. 무엇보다도 그가 받은 섬 밥상들에 꽂혔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형형색색의 해산물 일색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여수 안도의 어부 집에서 받은 밥상은 생선과 조개류, 해조류 등 해물들이 가득해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그의 게재물을 보며 그처럼 섬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강제윤 씨는 그렇게 필자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섬의 풍광과 음식을 즐기고 다니는 ‘팔자 좋은’ 사람이었다. 그 자신도 스스로를 ‘섬 나그네’라고 불렀다. 경남 통영에 살면서 틈만 나면 섬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런 순례를 바탕으로 신문에 섬의 자연이나 역사, 주민 삶, 음식 등에 관한 칼럼을 쓰고, TV 기행 다큐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맡아했다. 섬 음식을 소개한 책 <섬 맛 기행>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섬 음식에 대한 사랑은 커서 ‘삼도미식통제사’를 자처했다. 섬 음식에 관한 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필적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먹고 다니는 사람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목포나 포항, 인천의 선창가 뒷골목에 자리 잡은 노포들을 순례하기도 한다. 모두가 가성비 뛰어난 맛집들이다. 그 자신도 수준급의 요리사여서 서호시장에서 장을 봐 직접 해먹기도 한다. 암을 이겨내신 노모를 위해 맛난 상을 차리기도 한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고 맛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모두가 섬이 만들어준 직업들이다. 그가 풍기는 매력 덕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몇 차례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수식어에 ‘섬 사진가’가 추가됐다. 지난 2015년 봄부터 섬 사진전을 서울과 통영 등에서 여러 차례 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섬 풍경들이 소개됐다. 부표, 방파제, 통발, 조업 중인 어선, 바다의 무늬 등이 등장한다. 섬이 아니면 볼 수 없고, 깊숙이 들여다봐야만 포착해 낼 수 있는 모습들이다. 날씨와 시간이 만들어주는 수채화 같은 풍경을 선물처럼 받기도 한다. 양식장 부감 사진들은 이방인들의 눈에 추상화로 비치기도 한다. 지나가는 여행객이 아닌 섬 주민의 시각으로 표현한 것들이어서 그의 작품에서는 시간의 축적과 노동의 고단함이 함께 묻어난다. 단순히 목가적으로만 찍은 게 아니었지만, 시간과 노동을 읽지 못하면 섬 사진에는 목가적 풍경만이 남는다. 1년에 절반 정도는 섬에 머물고 있어 그 자신만의 시선으로 섬을 보게 된다. 늘 생각하는 것은 섬이 육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섬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깨고 싶어요. 내 부모형제가 사는 곳이다, 육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 한 권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말을 하는 걸 보며 기록으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강력한 매체인지를 알게 됐다. 전시회 초대의 글에 쓴 자신의 시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는 섬으로 갔다’가 섬에 대한 강제윤의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나는 또 남은 생애의 날들에도 더 자주 섬으로 갈 것이다. 당신 또한 섬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그 섬이 주저앉은 당신에게 새로운 ‘일어 섬’이 되어주기를. 이 사진들이 그 섬으로 가는 입구가 될 수 있기를..
그에게 섬은 숙명적인 존재인 듯 보인다. 보길도에서 태어난 이래 지금껏 섬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 20년 동안 400여 곳을 탐방했다. 우리나라 섬 가운데 유인도의 수가 465개이니 거의 모든 섬 사람들을 다 만난 셈이다.
섬과 맺은 인연은 소중히 여긴다. 수항도에서는 윗집 아랫집에 나란히 살던 할머니 두 분이 요양원으로 가는 바람에 빈집에서 혼자 굶고 있던 개를 거두어 뭍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우리 섬에 대한 강 씨의 애정과 열망은 크고 무겁다.
“영토의 3배가 영해입니다. 그 영해의 중심이 섬입니다. 바다로, 섬으로 가면 우리는 더 넓은 세상과 대면할 수 있죠. 섬의 길은 사방으로 열려 있어요. 섬에서 우리는 움츠러들어 있던 정신의 근육을 무한대로 키울 수 있습니다. 섬은 분명히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만드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겁니다.”
승려가 되려고도 했고,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 당하는 등의 이력에서 보듯 치열한 청년기를 보낸 후, 1998년 무렵 “다 내려놓고 살려고” 고향 보길도로 돌아왔다. 찻집을 열고 ‘보길도 편지’를 띄우며 시인의 이름으로 정착했다. 그러면서 점차 섬의 현실에 시선을 주기 시작한다. 섬이 홀대와 무시, 아픔과 서러움을 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섬 주민이 겪는 불편과 소외감 외에도 상업적 목적의 난개발이 청정 풍경을 해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강제윤 씨는 그런 부당한 현실을 섬을 사랑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2000년 초 노화도의 관광개발을 위한 상수원용으로 보길도의 자연하천을 막아 댐을 만들려 하자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단식 투쟁 끝에 2003년 댐 건설을 막아냈다. 전국의 섬들이 비슷한 자연파괴와 문화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실상을 깨닫고 ‘지킴이’를 자원하고 나섰다. 천연기념물인 백령도 사곶해변 경우도 활주로 건설로 꽃게와 가자미, 굴과 김 양식의 터전을 내줄 뻔 했으나 지켜냈다. 2015년엔 진도의 관매도 주민들이 기부채납 한 학교를 진도군이 대명콘도에 팔아버리려 하는 걸 막았고, 2016년에는 도로건설 때문에 파괴될 뻔한 300년 역사의 여서도 돌담길을 구했다. 2017년 관광개발 계획에 따라 강제이주 위기에 놓였던 거제 지심도 주민들의 삶터도 지켰다. 모두가 강 소장이 그 타당성 여부를 공론화한 덕이었다.
그에게 섬은 무한한 가능성이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그런 섬이 우리 바다에 3300여 개가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다. 강제윤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은 섬에 대한 우리의 인식 부족이다.
“울릉도가 태풍으로 역대급 피해를 입어도 관심을 못 받아요”
태풍이 육지를 벗어나면 섬은 아랑곳하지 않는 게 언론과 정부의 태도였다. 강 씨는 ‘섬 연구소장’ 자격으로 ‘섬에도 사람이 있다’라는 성명서를 써서 울릉도의 태풍 피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2020년 9월, 잇달아 불어닥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으로 피항해 있던 300t급 여객선이 침몰하고 50t이나 되는 콘크리트 블록들이 부표처럼 떠밀려와 터널 속으로 들어가 버린 실태를 알린 것이다.
“태풍이 내륙을 비켜 동해로 빠져나간다고 육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올리고 있을 때, 울릉도 섬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또, 어떤 피해가 생길지 걱정에 잠 못 들고 있습니다.”
성명서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국무총리와 해양수산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해 피해복구를 약속했다. 오랜 세월 동안 섬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활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섬 주민 수천 명이 태풍 피해 지원을 받았고, 부서진 남양항은 182억 원을 들여 복구에 들어갔다. 2021년 9월 16일부터는 1천2백 명이 탈 수 있는 2만 t 급 전천후 대형 여객선이 울릉 포항간을 오가면서 울릉도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10월 9일 밤 직접 배에 올라 6시간 반만인 새벽 5시 반에 도착하면서 뿌듯한 보람을 맛보았다. “울릉도는 독도와 한 몸으로 엮여 있어 관심이 크다 보니 특례 대우를 받은 덕이 작용했을 것”으로 강 씨는 생각한다. 울릉도처럼 주목받아야 할 섬들이 많은 현실을 잊지 않고 있다.
섬 주민들은 오랜 세월 불편과 푸대접을 견뎌왔다. 섬의 교통 상황도 그랬다. 섬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결항률이 높다. 강 소장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역별 여객선 연간 운항정지일 수는 포항~울릉 편이 147일, 인천~백령 93일, 여수~거문 91일, 목포~홍도 53일 등이다. 1년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날들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게 섬 주민의 현실이다. 고도孤島 백령도에서 긴급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헬기 외에 다른 방도가 없지만, 헬기 한번 뜨는 것이 쉽지 않다. “백령도가 북측과 인접해 있다 보니, 전투기 두 대가 옆에서 호위해야 한다. 응급헬기 한번 운영할 때마다 1000만 원이 넘게 든다”라고 설명한다. 강 소장이 지적하는 부분은 돈이 아니라 행정의 비효율이다. “환산해 보면 1년에 50억 원이 넘게 소요되지만, 예산이 없는 게 아니다. 이 예산으로 백령병원에 의료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방안을 제시한다.
“최전방에서 영토를 지키는 섬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게 강 소장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해상 영토가 내륙 영토보다 4배 넓다. 최전방에서 해상 영토와 그 안의 자원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섬 사람들이다”, “1980년에 유인도가 987개였는데, 2020년에는 465개로 줄어들었다. 절반 가량이 사라졌다”라는 강 소장의 실태 설명은 소구력이 있다. 유인도가 무인도가 되면 불순한 손길이 장난을 치게 된다.
“몇 년 전 서격렬비열도가 무인도가 되자, 중국인이 이 섬을 사려고 해 가격이 오고 가고 했었다”며 “만약 중국인들이 한국 섬을 매입한다면, 바로 영토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제윤 씨는 섬 연구가로서의 스스로의 활동 기준을 ‘상식’이라고 말한다. 2018년 5월 환경부 장관에게 “흑산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차별을 받아온 교통약자인 섬 주민들의 교통기본권 보장 사업”이라며 “배 말고는 섬주민들의 유일한 대체 교통수단인 소형 여객기 운항 문제가 적폐로 지목된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섬 주민들은 계속 교통 불편을 감수하란 말이냐?”라며 공항 건설을 막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도 그의 상식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의 섬 행정 실태는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국가기관이 발표한 섬 숫자가 다르다는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2020년 기준, 각 기관별로 3170개서부터 3952개까지 제각각이었다.
“섬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섬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섬 주민들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은 없고 이벤트성 정책들만 있다 보니 성과도 없다”라는 강 소장의 지적은 타당했다.
외롭게 활동을 전개하며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으나 사람들이 하나둘 씩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006년부터 전국의 모든 유인도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발로 답사해 실태를 기록하겠다는 목표에 따른 것이었다. 섬을 오가는 뱃삯, 숙박비 등 적잖은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며 한국의 섬들을 기록해왔다. 한 개인이 섬 주민들의 삶에 구원으로 다가간 것이다. 2012년에 ‘섬학교’를 열고 교장을 맡은 배경도 일반의 발길을 섬으로 이끌어 섬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2015년 섬 연구소를 세워 정책 제안 등 체계적인 활동을 펴며 ‘섬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하던 그는 섬 지원을 위한 보다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판단 아래 2018년 섬 전문 정부 조직 설립을 제안했고, 마침내 전남 목포 삼학도에 한국섬진흥원이 문을 열도록 역할했다. 섬진흥원은 섬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 원활한 교통과 응급의료체계 마련 등 기본권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주민들이 불편 없이 정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주려 한다.
그를 통해 필자도 비로소 섬을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차별과 소외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황폐화시킨다. 극복을 위한 출발은 섬과 섬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이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으려면,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어야 한다. 지난 세월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 시야가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 ‘갇힌 현실’에 균열을 내야 한다.” 강 씨의 섬 철학이다. 섬 정책 전환을 통한 개방성 확보가 우리 발전의 동력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섬의 날’이 지정됐다. 8월 8일이다. 이 또한 강제윤 씨의 숨은 공이 컸다. 섬은 생태, 문화, 관광 자원의 보고인 동시에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한해 1천6백만 명이나 되는 연안여객선 이용객들 가운데 1천3백만 명이 육지 사람들이다. 우리의 섬은 더 이상 섬 주민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이제 한국섬진흥원이 섬 주민들에게 빛으로 작용할 것이다.
강제윤 씨는 섬 주민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스스로 섬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힘들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 섬이라는 대상을 상식의 관점으로 보면서 문제 의식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어쩌면 섬이라는 존재가 사각지대에 있어온 까닭에 그렇게 깊고 멀리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섬 지킴이’이자 ‘섬 나그네’이기도 한 그에게 섬은 살아가는 이유이자 에너지원인 듯 보인다. 오늘도 구도자처럼 섬으로 향하는 그에게 섬은 사랑이라는 이름과 동의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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