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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어시魚詩’를 쓰다 - 김옥종 본문

‘어시魚詩’를 쓰다 - 김옥종

gubo54 2022. 8. 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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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에 가면 요리하듯이 시를 쓰는 요리사가 있다. 칼과 도마로 쓴 시들은 이채롭다. 필자가 그의 시편들에서 처음 받은 인상은 “요리로 詩를 썼였다. 요리를 하며 대상을 관조하는 시인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졌다. 민어, 홍어, 숭어, 고등어, 준치, 오징어, 낙지, 새우, 밴댕이, 병어, 호박, 감자, 더덕 등이 그의 눈과 손을 거쳐 시로 탄생하고 있다.

 

준치에게서 아직 미열이 느껴지는 봄날

신선한 것은 그 건져올린 바다의 냄새가 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 생선의 냄새가 난다

내 영혼의 냄새를 맡고 싶어지는 날

을 저며 회 무침으로 막걸리와 함께 내어 보면 알 일이다.

 

김옥종(1969~) 씨는 2019 5월 나이 쉰에 <민어의 노래>란 시집을 펴내며 요리사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시집은 입 소문을 타면서 순식간에 팔려나가 현재 4쇄를 찍었다. 신인의 시집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음식을 매개로 삶의 여러 모습들을 칼끝으로 그려내는 그의 독특한 시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도 한 번씩은 조금 피가 흐르더라도

가슴을 열어 겨울 쪽볕에 한나절은 말리고 싶다

졸여낸 것은 생선이나 사람이나

깊어지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나.

 

말린 생선 건정을 바라보다 깊어지기 위해 곰삭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생선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라는 발견을 한 것이다. 정약전(1758~1816)이 절해고도 유배지에서 만난 해물에 눈길을 주며 어보魚譜를 썼듯이 김옥종 역시 삶의 구비길에서 조우한 해물에 마음을 실어 어시魚詩를 쓰고 있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라져 가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녹진한 향수를 담고 있다. 다시 찾을 수 없는 먼 시간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너 나 가릴 것 없이, 저마다의 삶에 형벌처럼 드리운,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푹 삭아서 이제는 형체마저도 허물허물해져 버린 맺힌 마음도 느껴진다. 정말이지 입에 맞는 삶을 살기가 그리 쉽겠는가?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세월과

기다릴 것 같지 않은 계절의 끝에서

나는 여전히 네가 그립다

 

그의 시구는 정겨운 남도 사투리가 양념처럼 얹혀 시 맛을 더욱 돋운다.

 

진눈깨비 거저구없이 내리는 날 어깨 넓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세한의 맹목 숭어가 찰지더라며 묵은지 찢어 감아 먹고

새벽별이 단물처럼 쏟아질 때까지 흘러간 유행가나 부르자고 했다

어느 생이 있어 이보다 더 꼬숩겠는가

 

시인은 끝없이 재료들을 관조하며 그 속에다 삶의 편린들을 이식한다. 시 속에서 요리는 인생이 되고, 맛은 삶의 기쁨과 슬픔에 대입된다. 그의 시들을 읽다 보면, 절로 대상과 내가, 시와 삶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생각게 된다.

 

광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씨는 목포 앞 지도라는 섬 출신이다. 그의 요리와 시에 해물이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다. 그는 참으로 별난 인생의 주인공이다. 폭력배였다가 격투기 선수와 요리사를 거쳐 시인으로 살고 있는 까닭이다. 그를 파이터요리사 시인으로 부르고 싶은 이유이다. 2019년 늦봄 그의 첫 시집이 발간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광주로 찾아갔다가 토요일은 예약이 없으면 문을 열지 않는다.”라는 영업 방침에 막혀 돌아서야 했다. 2021 2 6일 드디어 현품 대조가 이루어졌다. 토요일이었지만 미리 이야기를 넣었던 덕에 그는 필자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구 서암대로 100번지 일대는 온통 푸른색으로 치장돼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킨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옆에 그의 가게 지도로가 있다. 시인의 집답게 시가 먼저 객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들러붙지 않기

뜨거운 열정에 어설프게 몸 내어주지 않기

속살 뽀얀 윗집 언니 질투하지 않기(하략)

 

깜밥이라고 이름을 붙인 제목은 누룽지를 뜻하는 듯 보였다. 해학적인 시구에 우리 일행은  터졌다. 누룽지를 대하며 세상살이의 철학과 연계해 낸 대목이 절묘했다.

 

 

김 시인은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 후 부지런히 오가며 안주들을 날아왔다. 양파즙에 버무린 토마토와 타르타르 소스의 연어에 이어 민어 건정과 낫또배추무침 곁들인 농어회, 칡소 육회, 복찜 등이 순서대로 상에 올랐다. 낙지 초무침은 인상적이었다. 데친 낙지를 신안의 노지 시금치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것인데 감식초가 입 안을 싸하게 바꾸어 주었다. 햇볕에 꾸덕하게 말린 농어를 미역과 함께 끓인 농어국은 맛이 깊었다. 푹 삭아 군내가 도는 배추지와 무지 맛은 감탄사를 내지르게 했다. 신안의 특산 김과 달래 간장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금방 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한결같이 행복한 밥상을 운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벽에는 그의 이력을 짐작케 하는 격투기 선수 사진들과 손님들이 원하는 거 다 해줘라고 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상황인식판이라는 메뉴판도 걸려 있다. 회와 해천탕, 문어장, 아나고(붕장어)볶음, 생선구이, 꼬막무침 등 해물요리를 비롯해 돼지주물럭, 육회 등도 올라 있다. 재료나 조리법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요리사임을 과시한다. 그릇들이 하나같이 고급지다. 외모가 주는 투박함과는 달리 주인의 세심한 심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횟감 옆에 장미꽃 한 송이를 장식해 고급스러움을 더 한다. 회도 장미 모양으로 쌓아 놓는다. 시인의 요리 역시 시 그 자체로 보인다.

 

주객이 뭉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의 이바구는 구수했다. 김 씨는 신안군의 섬 지도에서 자라던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연극반에도 들었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도 탔다. 힘도 세서 목포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폭력조직에 스카우트 당해 폭력배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학교의 문학 수업만큼은 빠지지 않았다. 싸움질을 하고 다녔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때 마음을 빼앗긴 한 살 아래 여학생은 지금껏 그의 반려자로 곁을 지킨다. 일화가 재미났다. 여학생의 소문을 듣고 찾아갔더니 누군가가 그 여학생의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다. 김 씨가 그 남학생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내일부터는 내가 그 가방 들랑께 그리 알어잉”. 운명의 배우자와 결혼해 1 2녀를 낳고 오순도순 산다. 요즘은 늦둥이 막내딸의 애정과 보호 속에 살고 있다. “13년 산 딸은 아버지에게 하루 1 다이어트와  1일 금주를 시키고선 철저히 감시한다. 덕분에 20kg를 줄여 80kg의 날씬한 몸으로 거듭났다. 그는 이 ‘13년 산의 마음을 얻고자 정성을 많이 들이는 눈치이다. “가벼워지면 삶의 무게도 줄어들까?” 하는 마음도 작용했다.

광주의 대학에 진학한 후 좋아하던 여자를 위해 폭력배를 그만 둘 때는 용기가 필요했다. 연인의 바람대로 조직 탈출을 결심하고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보스를 찾아가 고백을 했는데 보스는 돌아 앉아 손짓만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별 수 없이 다시 돌아올 걸로 여겼던 것이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격투기의 길로 들어섰다. “합법적인 싸움에 끌렸던 까닭이었다. “머리 깎고 눈썹 밀고”, “텐트와 라면, 오징어를 챙겨서 지리산으로 무도 훈련에 나섰다가 짐승 울음소리가 무서워” 3주 만에 하산했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이종 격투기 K1 그랑프리 개막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80cm 105kg의 거구였던 그는 헤비급으로 출전했다가 일본 선수에게 1 KO패를 당하고선 바로 은퇴해버렸다. “쪽팔려서(창피해서) 그랬다라는 게 이유였다. 좀 이른 결정이었지만, 스스로 그만둘 때라고 여긴 것이다. 2020 12월에 있었던 전 헤비급 복싱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의 맥 빠진 복귀전을 보고 SNS에 올린 소감에서도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사내는 그만둘 때를 알아야 다음 길이 열린다.”

타이슨은 그만했어야 옳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조기 은퇴 이후 킥복싱 체육관을 열었다가 오래지 않아 접고는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게 됐는데 뜻밖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다. 어느 날 단골손님이 광어를 들고 와 회를 떠 달라고 부탁해 응했는데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서른 살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을 요리사로 살고 있다. 글러브를 꼈던 손이 마늘을 까고 생선을 다듬고 있다.

돌이켜 보면 도쿄의 링 위에서 만났던 그 일본 선수가 김옥종 씨의 삶을 바꿔버린 셈이다. 상대의 펀치가 날아와 얼굴에 꽂히던 바로 그 순간, 김 씨의 운명은 다른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프로그래밍이 미리 돼있었던 것처럼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되고 다시 시인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의 아내와 어머니 식당의 단골손님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운명이란 얼마나 신비하고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마치 예정된 조화造化처럼 거대한 손이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 왔던 게 아닐까. 그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듣다 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있어 장기알 같은 개인의 행마를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한 여인을 사랑한 나머지 암흑가와 결별하고, 데뷔전에서 KO패를 당하면서 격투기와 작별했으며, 누군가의 회를 떠주다가 요리사로 입문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식으로 이해하자면, 김옥종은 우연이라는 거인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삶을 다시 창작해온 셈이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다시 자신에게 망치질을 가하며 새로운 앞날을 다듬어왔다.  우연한 거인 속에는 통증도 포함된다. 마흔 살 무렵, 시름시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고통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 치열하게 살지 말아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묘하게도 시가 써졌다. 치열하게 살던 기왕의 시간 속에서는 떠오르지 않던 글들이었다. 아픈 몸을 밀치고 뇌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음식재료에 대한 지식, 대상에 대한 몰입과 감정이입 습관이 역할했을 것이다. 그렇게 김옥종은 45살에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다. 그 과정에는 강제윤 시인의 역할이 컸다. 그가 따르고 좋아하는 강 시인이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시를 써볼 것을 권유한 것이다. 강 시인은 글과 음식과 사진에 모두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보길도에서 태어나 통영에 거주하면서 전국의 섬이란 섬은 다 찾아다니며 귀한 풍경과 음식을 음미하고 사는 팔자 좋은 사람이다. 섬 지킴이 일을 소명처럼 펼치고 다니다 김 씨와 조우했다. 두 사람의 절실함이 서로를 알아보고 인연으로 이어진 것일 게다.

 

김옥종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민어의 노래>를 접하고선 이구동성으로 잘 차린 남도의 잔칫상 같다고 평한다. “시가 참 맛있다.”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시 속에 풍성한 남도 음식이 등장해 입맛을 다시게 하는 까닭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감지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지 않을까 싶다. 다름 아닌 삶의 축소판 같은 음식과 그 재료들에 대한 요리사 시인만의 흉내내기 어려운 묘사이다.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

 

꽃바람이 부는 낯선 해변의 생태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느낌이다. 전장포라는 바닷가가 시인의 손을 거쳐 친근하고 내밀한 고향의 풍경이 된다.

작가는 첫 시집의 제목을 민어의 노래 대신 벼락 새비 젓으로 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18살 때 쓴 첫 시였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교과서에 실릴 시로 격찬했다. 실수로 하마터면 시집에서 누락될 뻔했던 작품이다. ‘새비(새우)  6개월을 걸려 담글 정도로 고단한 작업을 요한다. 대상에 몰입해 그에게서 삶의 정체를 눈치채는 시인의 자질을 일찌감치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시이다.

 

인연이 저물고 나의 사랑이 발효되지 못하고

골마지 낀 채로 잠들어버린 막걸리 식초처럼 허망한 새벽에

첫 닭이 울기 전 쇠구슬같이 내리는 이슬을 어깨로

받아내며 돌아오는 길에 묻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당신을 짓고 허물어내야

봄이 오는 것인가요

 

슬픔이 여전히 친밀할지라도 시적詩的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가. 김옥종의 시에서는 시간성과 공간성이 모두 읽힌다. 그의 인식을 이루는 양대 요소들이다. ‘파이터요리사시인인 그의 삶이 우연적 요소를 만나 변화를 거듭하며 새롭게 형성된 데는 시에서 감지되듯이 슬픔이라는 하나의 소가 일관되게 작용했을 듯싶다. 슬픔은 김옥종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에 다름 아니다. 그 슬픔을 매개로 시인은 시간을 더듬고 공간을 껴안으며 자신을 관통하는 시간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시어로 표출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무한대 속으로 불쑥 내던져진 공허한 존재에게 수반되는 슬픔은 가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인은 아픔과 벗처럼 지내며 익숙한 현재와 작별하곤 한다. 김옥종의 요리 같은 시, 시 같은 요리가 그리운 것은 그 슬픔에 공감하는 까닭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