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풍경의 언어를 읽다
풍류가객의 대모 – 기채옥 씨 본문

식당이든 주막이든 필자는 작고 외지고 볼품없는 집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낯선 길을 걷다 후미진 곳에서 맞춤한 가게를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리게 된다. 그렇게 발견한 집이 대단한 장점을 갖추고 있는 걸 여러 차례 경험한지라 나름 자부심도 크다.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를 정할 때도 초라한 집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음식점 고르는 기준은 세상이 정해놓은 객관보다는 그 밖의 여건들에 눈길을 주는 편이다. 가성비나 주인의 매력 혹은 그 집만의 특색, 편안함 등이다. 사람에 대한 좋고싫음의 기준도 마찬가지이다. 쓰임새가 있느냐보다는 소박하고 겸허하냐를 먼저 본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읽혀야 애정이 생긴다.

종로 4가 종묘 건너편 골목길의 작은 선술집에서는 저녁이면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부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이 드럼을 치고 있다. 이채롭다. 두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있다. 연주곡은 애니멀스Animals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에서 닐 다이아몬드Niel Diamond의 ‘솔리터리 맨Solitary man’으로 바뀐다. 남성 드러머만큼 힘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패드의 리듬에 맞춰 두드리는 스틱의 동작이 부드러우면서 능숙하다. 자주 연주하는 곡들인 듯 했다. 타악기는 악기 가운데서도 가장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소리를 발현한다. 그 소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선동해 절로 손과 발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연주가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로 이어지자 70 전후로 보이는 손님들이 점점 들뜬 표정이 된다. 그들과 스무 살 안팎 무렵을 함께 했던 노래들인 까닭이다. 그 노래들에는 청춘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녹아있을 터이다. 노래는 이처럼 세월이 흘러도 한 순간 뒷덜미를 낚아채며 듣는 이를 타임 머신에 태운다. 청중은 속절없이 아득한 시간 저편으로 끌려가게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 타임머신이 단연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의 ‘The end of the world’이다. 그 노래는 1960년 대의 가난하지만 풋풋했던 풍경들을 절로 떠올려준다. “왜 태양은 계속 빛나고 왜 바다는 계속 밀려오는가, 내 사랑은 이미 끝나버렸는데” 노랫말은 심금을 울리고 멜로디는 처연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슴은 어느샌가 아스라이 사라져 간 시간의 파편들을 더듬게 된다. 이곳 청중들도 그런 심정일 것이다. 노래의 위력이다.

그녀의 이름은 기채옥(1962~)이다. 갈 곳 없는 장년들의 뮤즈이자 노래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대모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늙수그레한 장년들이거나 혹은 서른 안팎의 청년들이다. 장년들은 대부분 기타를 연주할 줄 알아 자기 반주로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사람의 노래를 맞춰주기도 한다. 간간이 기채옥 씨가 간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임희숙의 <잊혀진 여인>이나 소리새의 <그대 그리고 나> 등이 그녀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수준급의 노래 솜씨이다. 객석은 어느새 고양된 청중들의 환호로 가득 찬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목말라하고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게 감지되는 순간이다. 한잔 술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한 그 무엇. 그것이 채워지지 않은 까닭에 그들의 발길은 곧장 집으로 향하지 못 한 채 이곳으로 향한다. 그것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있고, 맺지 못한 사랑일 수도 있으며, 무심히 지나가버린 시간일 수도 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인간에게 겸허해질 것을 요구한다. 그런 겸허함이 그 공간에 녹아있다.
이런 느낌을 전에도 가져본 적이 있다. 왕년의 가수 문주란(1950~) 씨가 운영하는 북한강변 ‘뮤즈’에서였다. 역시 장년층들인 고객들은 60~70년 대 스타 가수가 불렀던 노래들이 온존하고 있는 지난 시간들을 접하려 불원천리 그곳으로 몰려왔다. 한 제주도 거주 부부는 토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정기 공연에 맞춰 2박 3일을 투자했다. 돈으로 환산해보니 족히 백만 원은 소요되는 여행이었다. 노래들을 매개로 가수와 팬들은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만큼은 푸르렀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 보였다. 보기 좋았다.

기 여사가 필자더러 노래를 한 곡 청하는 바람에 조영남의 ‘모란동백’을 불렀다.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쳐 다시 설운도의 ‘보랏빛 엽서’를 불렀다. 술이 적당히 들어갔을 때 부르는 노래는 맛이 있음을 재확인한다. 가끔씩 노래를 부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계절과 날씨, 시각과 기분에 따라 부르고 싶은 곡의 종류가 달라진다. 술보다는 노래가 더 고픈 순간도 있었다. 잘하는 노래는 아니지만, 들어줄만한 정도는 된다는 자부심도 한몫을 하곤 했다. 손님들의 면면에 따라 레퍼토리를 정하지만, 때로는 빈 객석을 향해 부르고 싶은 곡도 있다. 기 여사의 주점에서는 한두 곡 이상은 하기 어렵지만, 기분은 충분히 낼 수 있다. 손님들끼리 기타 반주해주고 노래하는 풍경도 연출된다. 기타 연주가 가능한 사람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기타를 튕길 수 있는 게 이 집의 저녁 풍경이다.

가게 안에는 그녀의 연주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즐비하다.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이 담긴 것들이다. 버스킹 사진도 보인다. 악기 연주자들과 함께한 거리 공연의 모습이다. 오랜 단골들인 왕년의 음악인들과의 협연이라고 한다. 드럼을 치거나 노래 파트를 맡는다. 2020년 10월 30일에는 강원도 평창의 ‘메밀꽃 축제’에 초대돼 서울 재즈 오케스트라와 공연했다. 그녀에게는 음악이 고단한 삶을 이겨내는 수단인 듯 보인다.

기 여사는 처음에 동묘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이곳으로 옮겨 왔다. 필자도 동묘 시절에 이 집을 처음 찾았다. 자주 들러는 중고서점에서 헌책을 사들고 나오다 목이 말라 생맥주 한잔하러 들렀던 게 시작이었다. 편하고 친절하며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오후 3시경이었는데 생맥주를 주문하는 초면의 필자에게 그녀가 건넨 말은 “점심 드셨느냐?”는 질문이었다. 점심 전이면 밥과 반찬을 금방 준비해주겠다는 친절이었다. 공간의 가운데에 떡하니 비치돼 있던 드럼과 기타는 그때도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2019년 10월 말 이곳으로 옮겨와 새 둥지를 장만했다. 동묘 가게가 넓어서 이용하기에 편했지만, 이곳도 좁은 대로 아기자기하게 공간을 꾸몄다. 복층인 2층은 젊은이들의 회식 공간으로 자주 사용된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는 새벽 1시쯤에 하루를 마감한다. 생맥주, 소주, 막걸리 등 주종을 두루 갖추었다. 안주도 원하는 대로 해준다.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주 고객층이다 보니 술값도 저렴하다. 시그니쳐 메뉴인 프라이드 치킨을 비롯 주종에 걸맞게 여러 안주를 내놓는다. 가끔씩 강원도의 나물, 버섯과 동해안의 해물 등을 가져와 안주로 내놓는다. 두릅, 송이, 곰치, 가자미 같은 계절 별미들이다. 모두가 청정한 식재료들이다. 고향의 맛을 고객들과 나누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전해진다.
혼자서 안주 만들고 서빙하고 노래하고 계산을 하는 힘든 작업의 연속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무한 긍정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그 비결이 무언지는 깊이 알지 못하지만, 힘든 시기를 홀로 이겨낸 경험들이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나 싶다. 간혹 취중에 말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은 바깥으로 불러내 혼을 내고는 귀가 조치시키는 당참을 보인다. 대부분 단골인 데다 그녀보다 나이가 어린 취객들은 순순히 물러난다. 그래서 이곳은 늘 평화로움을 유지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총만 안 찼을 뿐이지 ‘서부의 보안관’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녀는 춘천에서 양구로 가는 도중에 위치한 산골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8남매의 막내였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했고 즐겨서 가수의 길을 꿈꿨지만, “팔자가 세진다”라며 꿈도 못 꾸게 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됐다. 자기의 꿈을 무산시킨 아버지를 오래도록 원망했다. 아버지는 막내딸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10살 때 서울 종로의 이모 댁에 보내 서울서 학교를 다니게 했지만, 채옥 씨는 집이 그리웠던 나머지 먼길을 되짚어 다시 산골로 돌아갔다. 열아홉 살 때 서울로 나와 스물두 살에 결혼해 2녀 1남을 두며 그녀의 인생은 안정기를 가졌으나 잠깐에 그치고 말았다. 남편의 도벽 탓이었다. 체중이 38kg으로 떨어졌을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다. 40살 되던 해부터 사업을 시작해 광명과 잠실에서 두 개의 업소를 운영했으나 실패해 좌절을 겪었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은 1억 5천만 원을 빌려가서는 갚지 않아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극단적인 생각 끝에 목숨을 끊으려 고향으로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눈 내리던 영하의 겨울 새벽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던 그곳에서 기 씨는 기적처럼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버지 역시 집안을 이끄느라 어려운 시간들을 감내해야 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한바탕 통곡을 하고서는 돌아섰는데 그 뒤로부터 희한하게 상황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도벽을 놓지 못하는 남편과는 결별하고 재기에 나서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세 자녀 가운데 둘째 딸만 빼고 모두 결혼시켰다. 동묘에서 종로로 옮겨온 후로 코로나 상황을 맞았으나 그녀의 가게는 큰 위축 없이 무난하게 버티고 있다. 가게를 옮기느라 친구들에게서 빌린 돈도 넉 달만에 모두 갚았다. 2020년 9월부터 그녀는 비로소 안정상태에 돌입했다.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놓여난 것이다. 아들이 SNS 상에 오른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선 “어머니 얼굴이 밝아 보이네요. 이젠 마음이 좀 편해지셨어요?”라며 물어왔다. “그래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하구나. 너희들도 모두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고...”라는 답변에 아들이 당부했다. “그동안 저희들 돌보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으니 이젠 좀 편히 지내세요.”
그녀는 요즘 “세상이 찬란한 빛으로 다가오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마이너스의 삶에서 벗어나 그토록 희망하던 플러스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까닭이다. 음악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곡을 더 찾게 된다. 요즘 들어 그녀가 몰입하는 곡들은 경쾌한 멜로디의 스페인 노래들이다. 어렵게 가사를 구해서는 드럼에 맞춰 따라 부르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삶이 그동안 얼마나 신산스러웠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그녀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퉁소를 구성지게 불던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아 악기를 다루며 노래를 하고, 아버지가 유학시키려 보낸 종로가 인연으로 작용해 이곳에서 가게를 열고, 목숨을 끊으려 찾아갔던 순간에도 아버지는 딸을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냈다. 인생의 마디마다 아버지는 동기를 부여하고 힘과 용기를 주셨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차츰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근처 북악산을 오르며 건강을 다진 후 장을 봐서는 가게를 연다. 종로 골목에서 점심을 먹은 중장년의 손님들이 문을 두드리기도 해서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함이다. 골목길에 밀집해 있는 음식점들이 그녀의 가게를 많이 홍보해주는 덕이 크다. 그녀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고마운 사람들을 입에 올리며 잊지 않으려 애쓰는 습관을 갖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불러일으켜 준다. 그들의 존재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는 까닭이다. 어떤 이들은 그녀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쳐주었고, 누군가는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동호인들로부터 꾸준히 버스킹 참여를 요청받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손님들을 생각해 사양하고 있다. 개인 사정으로 가게를 쉬어야 하는 것이 손님들에게 결례라고 생각할뿐더러, 노래에 대한 반응에서도 가게 안의 단골들이 야외의 청중들보다 더 열광적인 점도 가게를 지키려는 이유로 작용했다. 나이 들어서도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자녀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스스로 돈도 벌 수 있어 그녀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삶의 뒤안길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겠지만, 고난의 여정 끝에 마침내 누리게 된 행복은 그 인생 전체를 조명해주는 가치가 될 터이다.

흐릿한 달빛 아래 골목과 사람들이 살가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저녁 무렵이면 종로 4가 주점 꼬꼬방에서는 풍류가객의 대모 기채옥 여사가 당당하게 인생을 연주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시간은 삶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의 몫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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